심전도 검사 족집게 판독으로 어이없는 ‘의료 사고’ 막는다

국민일보

심전도 검사 족집게 판독으로 어이없는 ‘의료 사고’ 막는다

세종병원·메디컬에이아이‘실시간 심전도 판독센터’

입력 2023-05-01 20:25 수정 2023-05-01 20:27
15곳서 문의… 1년 간 5만여건 판독
일부 과만 전문의 판독 한계 보완
출산 임박 산모 'WPW' 증상 확인도
7월부터 유료… 비용 절감 등 효과 기대

심전도 검사 장면(왼쪽). 세종병원 권준명 인공지능빅데이터본부장(서 있는 사람)이 실시간 판독센터에서 일선 의료기관에서 자동 전송된 심전도를 살펴보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 심장 기능 이상을 파악하는데 보편 시행되는 검사가 심전도다. 국내에서 연간 1600만여건이 이뤄지고 있다. 심전도는 가슴과 사지에 전극을 붙이고 전기에너지를 보내 심장 상태를 확인하는 검사다. 심장의 전기적 흐름을 측정한 뒤 이를 파형으로 기록하는데, 맥이 불규칙한 부정맥과 심근경색 중 일부의 진단이 가능하다. 최근 심전도 검사에 적용되기 시작한 인공지능(AI)기술을 활용하면 심부전 좌심실비대증 등 30여 가지 심장질환을 찾아낼 수 있다.

응급의학 전문의인 권준명 세종병원인공지능빅데이터본부장은 1일 “심전도는 모든 과에서 찍는다고 보면 된다. 수술이나 시술 전, 수술·마취해도 안전한 심장 상태인지 확인하기 때문이다. 흉통·두근거림 같이 심장과 연관된 증상이라면 응급실이나 외래에서 측정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1회 검사 비용이 7000원가량이어서 저렴하고 비침습적으로 간단히 측정할 수 있는 점도 많이 활용되는 이유다.

그런데 국내에선 대부분의 심전도 검사가 ‘전문의 판독’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심전도 기계에는 측정된 데이터를 판독하는 자동 알고리즘이 내장돼 있는데, 정확도(60~80%)가 낮다는 단점이 있다. 자동 판독의 경우 실제 사람이 하지 않고 기계로 이상한 부분을 포착하는 방식이다 보니 잡음 등 돌발 변수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해 오류가 잦다.

권 본부장은 “심장내과나 중환자의학과 및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있는 대학병원이나 응급실 등의 환경에서는 전문의가 직접 심전도 검사결과를 판독한다. 하지만 판독 가능한 전문의가 없는 곳에서는 심전도를 찍고 제대로 판독하지 못하거나 심전도 기계의 자동 판독문만을 믿고 잘못된 진료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심전도 판독에 식견과 경험이 있는 전문과는 심장내과와 내과, 응급의학과, 중환자의학과, 흉부외과, 소아청소년과 등 일부에 국한돼 있다. 전체 의사의 20% 정도가 해당한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단순히 파형에 대한 지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다년간 경험으로 환자의 증상과 질환, 검사결과를 종합적으로 확인한 후 판독하는 것이 심전도이기 때문에 판독 가능한 진료과는 위에서 언급한 정도”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의 판독을 보다 용이하게 받도록 돕는 실시간 ‘심전도 판독센터’가 지난해 3월 국내 처음 문을 열었다. 보건복지부 지정 국내 유일 심장전문병원인 부천세종병원과 여기서 스핀오프(분가)된 AI전문 스타트업 메디컬에이아이가 공동 개소했다.

심전도 판독이 필요한 의료기관으로부터 검사 자료를 자동 전송받아 센터 소속 심장내과 및 중환자·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즉시 판독한 뒤 회신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국내 모든 심전도 장비와 연동되도록 개발돼 확장성도 크다.

지난 1년여간 전문의 판독 서비스를 통해 하마터면 벌어질 뻔한 큰 사고와 위기를 모면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한 산부인과 전문병원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기다리던 임신부가 수술에 앞서 심전도 검사를 시행했다. 자동 판독문 결과는 ‘정상’으로 나와 마취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문 판독센터에 의뢰한 심전도에서 ‘심실조기흥분증후군(WPW syndrome)’이 확인됐다. 마취를 하면 심박수가 빨라져 심장이 멈출 수 있는 위험 질환이다. 이에 산부인과는 즉각 마취를 중단하고 대학병원으로 산모를 이송했다. 또 다른 산부인과에선 분만촉진제를 맞은 후 가슴 통증을 호소하던 임신부에게 심전도 검사가 시행됐다. 자동 판독문에선 역시 정상 소견이 나왔지만, 전문 판독센터는 관상동맥질환을 의심했다. 급히 연락해 분만촉진제 투입 속도 조절을 권고했다. 관상동맥질환을 고려하지 않고 분만촉진제 투입 속도를 빠르게 하면 심근경색이 초래돼 자칫 사망할 수 있다.

심전도 자동판독 오류가 걸러지지 않고 실제 의료사고로 이어진 분쟁 사례도 있다. 2019년 한 종합병원 의사는 정상으로 나온 환자의 심전도 자동판독 결과를 바탕으로 관상동맥중재술을 시행했지만, 시술 중 심정지가 발생해 사망했다. 유가족은 병원과 의사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기계 판독은 보조적 수단에 불과하다”며 최종 판단은 의사가 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수 억원의 배상을 판결한 바 있다.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심전도를 판독할 수 있는 의사가 적은 환경에서 요즘도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부정확성 때문에 의사들이 심전도 기계 판독문을 믿지 못하며 판독을 하지 못하는 의사들만이 자동판독문에 의존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 판독센터는 이런 측면에서 의료계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심전도 판독이 가능한 전문의를 자체 확보하지 못한 내·외과 의원, 2차병원 등 15개 기관이 판독센터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지금까지 5만여건의 판독 서비스가 이뤄졌다.

메디컬에이아이 대표이기도 한 권 본부장은 “1년여간은 시범적으로 무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오는 7월부터는 유료로 전환할 계획”이라며 “상용화되면 심전도 판독의 접근성 향상, 결과 오류 방지, 국민건강 증진 및 사회적 비용 절감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정부 차원의 산간·도서 벽지 등 의료 취약지 지원에서 심전도 전문의 판독이 필요할 경우에도 적극 활용할 수 있으며 향후 ‘웨어러블(몸에 부착) 심전도 검사’ 같은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지금처럼 의료진 간 의뢰로 이뤄지는 심전도 판독 서비스는 ‘원격 협진’에 해당해 현행 의료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다만 원격 모니터링에 활용될 경우 현재 논의 중인 원격(비대면) 의료에 대한 제도적 정비가 선행돼야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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