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한·미·일 동맹 우선이라는 김태효의 확신

국민일보

[여의춘추] 한·미·일 동맹 우선이라는 김태효의 확신

남도영 논설위원

입력 2023-05-05 04:08

역대 정권마다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 인물들이 있었다. 김대중정부의 임동원 통일부 장관, 노무현정부의 문정인 특보, 문재인정부의 서훈 국가정보원장이다. 이들은 대통령을 설득해 전체적인 외교안보 전략을 디자인했고, 북한 미국 중국 일본 등과의 협상을 주도했다. 윤석열정부 외교안보 키맨은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다. 정부 출범 직후만 해도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과 김 차장 쌍두 체제로 평가됐다. 김 전 실장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물러난 뒤 사실상 김 차장 주도 체제가 구축된 것으로 보인다.

김 차장의 화법은 명쾌하다. 어떤 질문에도 거침없이 답변하는 스타일이다. 가끔 위험해 보이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불필요한 사족도 별로 없고, 발언의 논리적 완결성도 높은 편이다. 정부 출범 이후 김 차장은 과로로 인해 눈 각막이 들떠 수술을 받고 한동안 혈안 상태로 근무하기도 했다. 김 차장이 구상한 대한민국의 대외전략은 한·미·일 동맹 강화로 요약된다. 한·미·일 동맹이 강화돼야 안보를 보장받을 수 있고, 중국의 압박을 견뎌낼 수 있으며, 북한 핵을 포기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핵 포기가 전제되지 않은 대화나 정상회담은 의미가 없으며, 압박과 제재는 강화돼야 한다는 일관된 구조다. 윤 대통령이 김 차장에게 설득된 것인지, 김 차장의 주장을 선택한 것인지는 정확지 않다. 어쨌든 지난 1년간 윤 대통령의 외교안보 행보와 김 차장의 확신은 정확히 일치한다.

김 차장은 이명박정부에서도 외교안보 정책의 키맨이었다. 김 차장은 41세에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에 발탁돼 대외전략기획관으로 승진하며 4년 5개월을 근무했다. MB의 ‘비핵개방 3000’ 공약을 입안했고 전시작전권 전환 연기 등을 주도했다. 김 차장은 MB 정권 말기인 2012년 7월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 밀실 협상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 차장은 최근 이뤄진 한·일 정상회담과 한·미 정상회담의 기획자다. 회담 준비와 논란 수습 과정에서 설화도 몇 차례 있었다. “워싱턴 선언은 사실상 핵 공유”라고 말했다가 미국의 반박이 나왔다. 미국의 도·감청 의혹에 대해 “악의를 갖고 했다는 정황이 없다”고 말했다가 ‘선의의 도·감청도 있느냐’는 비판을 들었다. 강제징용 제3자 변제안과 관련 “일본이 깜짝 놀랐다”고 말해 ‘일본에 유리한 협상임을 자인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 보니 더불어민주당과 좌파 진영의 표적이 됐다. 민주당은 김 차장을 사퇴시켜야 한다고 공격하고 있다. 다만 10년 전과 달리 김 차장이 여론에 밀려 자리에서 물러날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이후 중국 봉쇄정책을 본격화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중국 봉쇄정책에서는 전임자와 다르지 않다. 김 차장은 2021년 ‘미·중 신냉전 시대 한국의 국가전략’이라는 논문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적당히 잘 지내면서 모호한 외교를 펴는 것이 불가능해졌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미·중 신냉전이 격화되는 격변기에 선택의 시점을 놓치면 국제사회의 주류 대열에서 낙오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노무현·문재인정부의 ‘균형자론’은 허구이며, 미국을 선택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현 시점에서 김 차장의 확신과 예상이 맞는지를 단언하긴 어렵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많은 반론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정부 1년의 변화를 보면 우리의 양보를 기반으로 한·일 관계는 개선되는 방향으로, 한·미 동맹은 안보 측면에서 업그레이드되는 쪽으로 움직여왔다.

다만 김 차장의 예상이 맞으려면 다른 많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미·중 대립이 결국 미국의 승리로 끝날 것, 중국의 거센 압박을 미국 도움으로 이겨낼 수 있을 것, 북한의 도발을 제압할 수 있을 것, 압박과 제재가 북핵 포기로 이어질 것 등의 조건들이다. 하나하나 만만치 않은 난제다. 얼마 전 만난 여권 고위관계자는 “(대통령실은 물론) 어느 조직이나 매파도 있고 비둘기파도 있다”고 말했다. 요즘 대통령실을 보면 하나의 확신, 하나의 목소리만 들리는 느낌이다. 비둘기파는 사라지고 매파의 목소리만 들리는 상황은 위험하다. 김 차장이 맞을 수도 있지만, 김 차장이 틀릴 경우 노선을 수정할 플랜 B도 있어야 한다. 그런 대비는 결국 윤 대통령의 몫이다.

남도영 논설위원 dynam@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