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받지 않고 섬기겠다” 변화 짊어진 왕관의 무게

국민일보

“섬김받지 않고 섬기겠다” 변화 짊어진 왕관의 무게

대관식, 두 시간 동안 5단계로 진행
왕실과 갈등 빚은 해리 왕자도 참석
세계 각국 정상 일제히 축하 메시지

입력 2023-05-08 04:07
영국 찰스 3세(왼쪽) 국왕과 커밀라 왕비가 6일(현지시간) 대관식을 마친 뒤 런던 버킹엄궁 발코니에 나와 군중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찰스 3세(74) 영국 국왕이 6일(현지시간)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을 치르고 영국과 14개 영연방 왕국의 40번째 국왕으로 즉위했다. 1958년 왕세자로 책봉된 지 65년 만이다. 그는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섬기겠다”고 맹세했다.

오전 11시쯤 시작된 대관식은 ‘인정(The recognition)-맹세-성유-대관-즉위’ 5단계로 2시간가량 진행됐다. 먼저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가 700년간 보존된 ‘대관식 의자’ 옆에 선 찰스 3세에게 “의심할 여지 없는 왕”임을 선포했다. 이어진 맹세 의식에서 캔터베리 대주교는 찰스 3세를 향해 “재위 기간 법과 영국 국교회를 수호할 것임을 확인해 달라”고 말했고, 찰스 3세는 “그 약속을 행하고 지키겠다”고 서약했다.

찰스 3세는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섬기라고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 당신의 진리를 깨닫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이후 가장 신성한 순간으로 여겨지는, 국왕의 머리·가슴·손에 십자가 모양으로 성유(聖油)를 바르는 의식이 장막으로 가려진 채 진행됐다. 이어 정오쯤 찰스 3세가 1661년에 제작된 2.2㎏ ‘성 에드워드 왕관’을 착용하며 국왕으로 공식 즉위했다. “신이시여, 왕을 지켜주소서(God Save the King)”라는 말과 함께 2분간 종소리와 트럼펫 소리가 사원 내부에 울려 퍼졌다. 영국 전역에서는 예포가 발사됐다.

이어 윌리엄 왕세자가 찰스 3세에게 대표로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했다. 커밀라 왕비도 왕관을 쓰고 즉위한 뒤 찰스 3세에게 왕실 예법에 따라 한쪽 다리를 굽히고 인사했다. 왕관을 쓴 찰스 3세 부부가 사원을 나서면서 대관식은 마무리됐다. 버킹엄궁으로 돌아온 이들은 왕관을 쓴 채 발코니에 나와 광장에 운집해 있던 청중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이날 찰스 3세의 대관식과 이동 행렬을 보기 위해 모인 인파가 버킹엄궁 앞을 가득 메운 모습. 신화연합뉴스

대관식에는 왕실의 초청을 받은 국내외 정상 등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왕실과 갈등을 빚다 2020년 미국 캘리포니아로 떠난 찰스 3세의 차남 해리 왕자였다. 그는 대관식에서 윌리엄 왕세자보다 두 줄 뒤에 앉았지만 왕실 일가 대부분이 참석한 버킹엄궁 발코니 인사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해리 왕자는 대관식 종료 후 곧바로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윌리엄 왕세자의 막내아들 루이(5) 왕자도 ‘신스틸러’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는 예식 도중 하품을 하는 등 지루해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이며 웃음을 자아냈다. 커밀라 왕비의 전남편 앤드루 파커 볼스도 대관식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한 질 바이든 여사는 손녀 피네건과 동행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영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 영연방 국가 지도자 등도 자리를 지켰다.

불참한 정상들은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양국의 지속적인 우정은 국민 모두를 위한 힘의 원천”이라고 밝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함께 노력해 우호를 증진하고, 안정적이고 호혜적인 관계로 양국과 세계를 더 복되게 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찰스 3세는 이번 대관식을 통해 시대적 변화를 수용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군주제에 대한 비판 여론과 왕실 내부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특히 군주제에 대한 영국 내 청년층의 지지는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청년층의 32%만 군주제를 지지했다. 벨리즈, 자메이카 등 영연방 소속 국가의 탈퇴 움직임도 일고 있다.

왕실 가족 내부 문제도 만만찮다. 왕위 계승 1순위인 윌리엄 왕세자와 해리 왕자의 불편한 관계가 대표적이다. 해리 왕자는 다큐멘터리와 자서전 ‘스페어’를 통해 왕실의 치부를 폭로했다.

장은현 기자 e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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