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고독과 소외… 37만 관람 ‘호크니 신화’ 넘을까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 37만 관람 ‘호크니 신화’ 넘을까

서울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展… 연일 관객몰이

입력 2023-05-09 20:47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하는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에 나온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 호퍼는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을 일상의 풍경에 투사하는 이런 그림으로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하는 걸작전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이 연일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1만2000∼1만7000원의 유료 관람임에도 불구하고 개막 16일차인 지난 7일 현재 6만명이 다녀갔다. 미술관 측은 이런 추세라면 지난 2019년의 영국의 팝아트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가 거둔 37만명 관람객 신화를 깰 것으로 기대한다.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는 계단 침실 현관 등 도시인의 일상을 구성하는 풍경을 스냅사진처럼 포착하고 이를 빛과 그림자가 대비되는 대담한 구도로 표현했다. 그가 그린 20세기 초반 미국의 소도시 풍경에는 건물만 있고 사람이 없거나, 있더라도 인물들은 서로 딴 방향을 바라본다. 그래서 현대인의 고독, 도시 속의 소외를 표현한 화가로 평가 받는다.

미국 뉴욕주 허드슨강 인근 나이액에서 태어난 호퍼는 부모의 권유로 처음에는 실용 미술 위주의 일러스트레이션 학교에 진학한다. 하지만 예술가가 되기 위해 이듬해 뉴욕예술학교에 편입해 20세기 전반 미국 사실주의 화단을 이끈 로버트 헨라이에게 배웠다. 1906년 24세 때 예술의 수도 파리로 건너가 1910년까지 3차례 체류한다. 파리에서 그는 당시 유행하던 입체파, 야수파 등 전위미술에 영향을 받기보다는 한물 간 미술로 취급받던 인상주의에 더 끌린다. 호퍼 특유의 인상주의가 가미된 사실주의풍의 회화는 이 시기 형성됐을 것으로 보인다.

'열린 창문'(1918∼19).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그는 42세가 되던 1924년까지는 뉴욕에서 광고미술과 삽화용 에칭판화를 했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일이지만 극장 입구에 모인 뉴요커, 기차를 급히 잡아타는 남자 등 삽화를 그리는 일은 도시인의 일상을 관찰하는 훈련이 됐다. 이후 1920년대 중반부터 도시인의 일상을 소재로 수채화와 유화를 그리며 현재의 명성을 얻는 호퍼 특유의 세계를 구축했다. 전업화가로의 변신은 1924년 수채화로 유명한 동료 예술가 조세핀(1883∼1968)과의 결혼이 계기가 됐다. 조세핀은 과묵한 에드워드와 달리 활달한 성격으로 딜러, 컬렉터들과 교류하며 호퍼가 명성을 얻어가는 데 결정적인 조력자 역할을 했다. 호퍼 사후에는 2500점에 달하는 작품과 자료 일체를 뉴욕 휘트니미술관에 기증했다.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과 미국 뉴욕 휘트미술관이 공동으로 기획했다.

전시는 프랑스 파리, 미국의 뉴욕과 동부 뉴잉글랜드 등 작가가 좋아하거나 작품에 대한 접근방식에 영감을 줬던 장소를 따라 도시의 일상에서 자연으로 회귀를 거듭하며 지평을 넓혀간 호퍼의 65년 화업을 돌아본다. 전시는 ‘에드워드 호퍼’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케이크코드’ ‘조세핀 호퍼’ ‘호퍼의 삶과 업’ 등 7개 섹션으로 구성돼 있다.

자화상(1925∼30).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호퍼 부부는 미국을 횡단하는 등 평생에 걸쳐 여행을 즐겼고 여행에서 영감을 얻었다. 메인주를 비롯해 미국 동부의 6개주를 뜻하는 뉴앵글랜드 섹션은 그런 여행기의 현장이다. 뉴잉글랜드 지역 중 매사추세츠주 케이프코드 지역과 관련된 그림들은 별도 섹션을 마련했다. 케이프코드가 호퍼에게는 제2의 고향과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부부는 케이프코드 반도 남단에 위치한 트루로의 풍광에 푹 빠졌고, 현지 우체국장이던 벌리 콥의 작은 집을 빌려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1934년부터는 이곳에 작업실까지 마련해 매년 여름을 지냈다. 우체국장에게 빌린 집을 그린 ‘벌리 콥의 집, 사우스트루로’(1930∼1933)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시절 백악관 집무실에 걸었던 그림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섹션에 소개되는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과 ‘오전 7시’(1948) 같은 작품은 호퍼가 어떻게 풍경 속에 도시인의 내면을 투영시키는지 잘 보여주는 걸작들이다.

'햇빛 속의 여인'(1961).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전시에는 드로잉과 판화, 유화, 수채화 등 작품 160여점과 호퍼의 이웃이었던 산본이 기증한 자료 110여점 등 총 270여점을 선보인다. 하지만 대표작들은 ‘자화상’ ‘햇빛 속의 여인’ ‘7시’ ‘이층에 내리는 햇빛’ 등 10점이 채 안 된다.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다. 그럼에도 평일 오전에도 관람객들이 모여들어 감상에 몰입하기 힘들 정도다. 관람은 통상과 달리 2, 3층부터 시작해 거꾸로 1층으로 내려오는 동선을 취했다. 그러다보니 가장 넓은 공간인 1층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는 장르인 아카이브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쓰였다. 결과적으로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몰리는 걸작을 걸고, 넓은 공간에 관심을 덜 받는 아카이브를 전시하는 공간 구성의 미스매치가 생겼다. 또 초기에 그린 삽화들은 호퍼의 작품 세계에서 도시인의 일상성이 왜 중요하게 들어섰는지를 보여주는 장르이지만 전시 맨 마지막에 등장해 아쉽다. 전시는 8월20일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