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두경부암 3명 중 1명, 성 접촉 전파 HPV 원인

국민일보

[And 건강] 두경부암 3명 중 1명, 성 접촉 전파 HPV 원인

HPV가 일으키는 암

입력 2023-05-16 04:04 수정 2023-05-16 04:04
미국·호주 등 청소년에 무료 예방접종
한국 만 12세 이상 남성에게도 지원
현 정부 국정과제로 삼았지만 난기류
지자체 차원 지원 확대 경우는 늘어

HPV가 자궁경부암뿐 아니라 성별 상관없이 두경부암, 항문암, 생식기암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남녀 모두에 백신 접종을 권장하고 지원을 확대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국민일보DB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올해 '세계 예방접종 주간(4월 마지막 주)'의 슬로건은 'The Big Catch-up'이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 놓친 백신을 다시 따라잡아 접종하자는 의미다. 따라잡기 접종이 필요한 백신 중 하나로 'HPV(사람유두종바이러스)백신'이 거론된다. 마침 5월 셋째 주는 대한산부인과학회가 정한 자궁경부암 예방 주간이기도 하다. 자궁경부암은 HPV가 일으키는 대표적 암으로, 백신 보급과 조기 검진 활성화 등으로 국내외에서 전반적으로 지속 감소 추세다.

성 접촉으로 옮는 HPV는 자궁경부암뿐 아니라 남녀 상관없이 생식기암(음경암·질암) 항문암 생식기사마귀 등도 유발하는데, 이에 대한 인식은 낮은 편이다. 이 때문에 HPV 관련 질환 예방 효과를 높이기 위해 남녀 모두에게 백신 접종이 권장된다. 근래엔 HPV와 대표적 남성암인 두경부암의 연관성이 밝혀지며 백신 적응증을 두경부암으로 넓히는 나라들도 늘고 있다.

한국은 현 정부 들어 HPV백신의 국가필수예방접종(NIP) 지원 대상을 여성(만12~17세, 만18~26세 저소득층)에서 비슷한 연령대 남성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데, 최근 ‘비용 효과성이 낮다’는 공공기관의 연구결과가 나와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연구 설계가 너무 보수적으로 이뤄졌다”거나 “남성에게 발생하는 다른 질환, 두경부암 등에 대한 백신 효과가 과소평가됐다”는 전문가 지적이 제기되면서 정부가 이달 중 추가 연구를 발주키로 했다. 정부 정책 추진과 별도로 올해부터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HPV백신 지원에 남성을 포함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HPV 양성 두경부암 관심 고조

두경부암은 최근 몇 년 새 HPV 관련 가장 주목받는 암이다. 두경부는 목과 머리에서 뇌와 척추, 눈을 제외한 모든 기관이 해당한다. 즉, 입천장 잇몸 혀 혀뿌리 목구멍 편도 후두 침샘 코 주변 뼈 등에 생긴 악성 종양이다.

두경부종양학회지 보고(2009년)에 따르면 두경부암에 포함되는 구인두암(편도암·혀뿌리암 등)의 73.1%, 구강암의 36.1%, 후두암의 7.4%는 HPV 감염과 관련돼 있다. 두경부암 전체로 보면 3명 가운데 1명(31.9%)이 HPV 원인으로 파악된다. 과거 흡연과 음주가 중요한 발생 원인으로 알려졌던 두경부암에서 성 접촉으로 전파되는 HPV가 관심 사항으로 대두하고 있는 것이다. 1999~2017년 국내 두경부암 발생 현황을 연구한 논문(2021년)에 따르면 HPV 양성(+) 두경부암이 증가하고 HPV와 관련 없는 유형은 감소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이 같은 트렌드 변화는 남성 흡연 및 음주율 감소와 함께 개방적인 성생활 확산 등이 영향을 줬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2019년 기준 국내 두경부암 신규 발생자(5613명)의 76.7%는 남성이 차지했다. 미국에선 2013년부터 4년간 남성의 HPV 기인 구인두암이 여성 자궁경부암 발생 건수를 넘어섰다는 보고도 있다.


현재 미국과 호주 캐나다 등 전 세계 66개국이 HPV백신을 남녀 청소년에게 무료로 맞히는 NIP를 시행 중이다. 백신 비용 지원 연령과 종류는 나라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남녀 만12~13세가 대다수이며 대체로 고위험 HPV 9가지를 막아주는 9가 백신으로 접종이 이뤄지는 추세다.

나아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20년 HPV백신 적응증에 두경부암을 처음으로 추가했다. HPV 감염으로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변형되는 것은 생식기나 두경부 어디든 동일하고, HPV백신이 병변 위치와 성별에 상관없이 유사한 수준의 면역 효과를 보인다는 의학적 근거가 적응증 확대에 참고됐다. 이후 비슷한 행보의 국가는 대만 캐나다 태국 홍콩 필리핀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바레인 등 10개국으로 늘었다. 호주와 캐나다 등 백신 접종을 통한 남녀 HPV 질환 예방에 일찍이 나섰던 국가들은 자궁경부암의 경우 머지않아 집단면역을 통한 완전퇴치까지 내다보고 있다.

남성 지원 확대, 비용 효과성 낮다?

한국은 현재 NIP 지원 대상을 여성에게 한정하고 있으나 현 정부는 국정과제로 지원 대상을 만12세 이상 남성으로 확대하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난 3월 공개된 ‘HPV 백신의 NIP 확대를 위한 비용 효과성 연구’에서 부정적 결과가 나와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다만 해당 연구 모형에서 여성의 자궁경부암 및 그 전암단계가 HPV 관련 질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상대적으로 남성 대상 편익이 미치는 영향이 과소평가됐다는 한계가 지적돼 이를 보완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질병관리청은 관련 학회 의견을 듣고 국내 남성에서 발병하는 구인두암, 항문암 등의 증가 추세를 반영하는 추가 연구를 올해 말까지 진행키로 했다. 전문가들은 진료과를 막론하고 한 목소리로 “HPV 감염으로 인한 두경부암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앙대병원 이비인후과 이세영 교수는 15일 “HPV가 암을 유발하는 기간은 적게는 10년에서 수십 년까지 걸리기 때문에 모든 암종에 대해 HPV백신의 임상 결과나 사회경제적 효과를 확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환자 삶의 질 등 다양한 요소를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HPV는 남녀 모두 감염될 수 있는 만큼 한쪽 성별의 접종만으로 집단면역을 기대하기에는 부족하다. 장기적 효과를 위해 HPV백신 대상을 적극 확대하는 세계적 추세에 맞춰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남성 HPV백신 접종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면서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지원 확대를 결정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인천시는 올해 1월부터 만18~26세 차상위층 남성에게 백신 접종 비용을 전액 제공하고 있으며 인천 옹진군은 지난 3월부터 만12~17세 남자 청소년과 만18~26세 저소득층 남성을 지원하고 있다. 전남 영광군은 지난 4월부터 성별 구분 없이 만18~26세에게 백신을 지원 중이다. 또 경북 영천시는 내년부터 만12~17세 남자 청소년, 만18~26세 저소득층 남성에게 전액 지원키로 했다. 대구시, 전북 전주시, 전남 여수시, 전남 순천시 등도 2024년부터 비슷한 지원책을 추진 중이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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