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입양 뒤 후견 의무 위반… 법원 “홀트가 1억 배상하라”

국민일보

해외 입양 뒤 후견 의무 위반… 법원 “홀트가 1억 배상하라”

美 양부모 학대받다 두 차례 파양
시민권 못 얻고 추방… 강제 모국행
입양기관 관리 책임 인정한 첫 판결

입력 2023-05-17 04:05
입양인 신송혁(아담 크랩서)씨의 법률대리인 김수정 변호사가 1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위법 입양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 승소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3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신송혁(미국명 아담 크랩서·46·아래 사진)씨는 현지에서 양부모의 학대를 받다 두 차례 파양을 당했다. 두 번째 양부모에게 버려져 16살에 거리로 내몰린 뒤 돌아온 건 추방이었다. 성인이 되도록 미국 시민권을 얻지 못한 신씨는 2016년 37년 만에 타의에 의해 고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법원은 16일 입양기관이 신씨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재판장 박준민)는 신씨가 대한민국과 홀트아동복지회를 상대로 2억100원을 배상하라며 낸 소송에서 “홀트는 신씨에게 1억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입양기관의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다. 다만 국가 책임은 인정되지 않았다.

신씨 측은 입양 과정에서 위법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홀트는 친모가 있지만 출생신고가 돼있지 않은 신씨를 ‘기아 호적’(고아 호적)에 올려 입양시켰다. 당시에는 기아 호적을 가진 경우 양부모를 만나지 않고도 대리입양이 가능했다. 이 호적에 ‘신성혁’이었던 그의 이름은 ‘신송혁’으로 잘못 적혔다. 신씨 측은 국가가 이 과정을 사실상 묵인했다고 주장했다.

입양 후 사후관리도 미흡했다고 신씨는 지적했다. 신씨와 그의 누나를 함께 입양한 양부모는 남매를 학대하다 5년 뒤 이사하면서 두 사람을 파양했다. 12살에 누나와 다른 가정에 입양된 신씨는 정서적·신체적 학대에 시달리다 16살에 다시 파양됐다. 시민권을 얻지 못한 그는 영주권을 재발급받는 과정에서 청소년 시절 경범죄 전과가 드러나 2016년 추방됐다. 아내와 세 아이와도 헤어져야 했다.

신씨 측은 재판에서 “홀트와 정부는 국가 간 입양의 기본 의무라고 할 수 있는 입양 아동의 국적 취득 조력·확인을 다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홀트 측은 “신씨의 개인적 상처는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홀트의 위법 행위 탓은 아니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홀트는 신씨가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후견인으로서 보호 의무, 국적 취득 확인 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다만 홀트가 일부러 허위의 기아 호적을 만들었다고 인정할 증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또 “공무원들이 고의 또는 과실로 홀트에 대한 감독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정부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신씨 측은 항소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신씨 측 대리인은 “홀트의 불법 책임을 인정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 불법 해외입양을 관리하고 계획 및 용인해온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며 “항소 여부를 원고와 의논하겠다”고 말했다.

가족과 가까이 있기 위해 멕시코로 이주한 신씨는 이날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신씨와 같은 해외 입양인들이 방청석을 채웠다. 1974년 홀트를 통해 덴마크로 입양됐던 피터 멜러(한국명 홍민·49) 덴마크 한국인 진상규명 그룹(DKRG) 공동대표는 “판결 내용을 토대로 다른 해외 입양인 소송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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