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하나님의 일터] “세 번의 큰 시련… 나를 내려놓고 주님만 의지하게 했다”

국민일보

[세상은 하나님의 일터] “세 번의 큰 시련… 나를 내려놓고 주님만 의지하게 했다”

건설자재 전문기업 하우씨티알 신성우 대표

입력 2023-05-2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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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우 하우씨티알 대표가 최근 경기도 하남 현대지식산업센터내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했다. 커피매니아인 신 대표는 사무실 한켠에 커피를 내릴 수 있는 공간을 제대로 만들어 놓고 있다.

㈜하우씨티알은 건설 자재 전문기업이다. 콘크리트에 들어가는 혼화제를 취급하는데 인천공항 등 바닷가 공사의 염분이 있는 콘크리트 공사나 이케아 등 물류센터 바닥의 초평탄 콘크리트 공사에 들어가는 혼화제를 독점 공급하고 있다. 또 효과가 입증돼 국내에서 주목받는 층간 차음재를 수입하고 있다. 건설 자재 분야에선 손에 꼽히는 기업이다.

하지만 신성우(60) 하우씨티알 대표는 ‘믿음의 기업’으로 손꼽히고 싶다고 했다. 최근 경기도 하남 현대지식산업센터 사무실에서 신 대표를 만났다. 회사명 하우씨티알의 하우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에서 ‘하’ ‘우’를 땄다. 임마누엘 하나님을 의미한다. 회사는 월요일마다 직원 예배를 드리며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한다.

서울 오륜교회 장로인 신 대표는 “예전에는 나의 실력, 내 주변 사람들을 의지했다. 그런데 몇 번의 시련을 통해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있다.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다.

교회는 어릴 때부터 다녔다. 군대를 제대하고 직장을 가졌다. 건설회사 삼부토건에 입사해 구매를 담당했다. 국내에 통용되는 대부분 자재를 다뤘다. 또 대한건설자재직협의회(건자회) 회장을 2년간 지내고 오랫동안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신앙은 ‘선데이 크리스천’으로 생활했고 직장은 일 중독자로 다녔다고 했다.

그러다 첫 번째 시련을 맞았다. “일 때문에 대전을 내려가는데 역에 내리자마자 건강 검진한 병원에서 전화가 왔어요.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는 39세에 서울아산병원에서 위암 절제 수술을 받았다.

당시 건강에는 자신 있었다. 일 때문에 밤새 술을 마시고 다녔어도 끄떡없었다. 그런데 아내의 지인이 병원을 개업하는데 손님을 보내 달라고 해서 갔다. 전날 12시까지 술을 먹다가 뒤늦게 깨닫고 다음 날 오후에 병원을 찾았다. 하나님께서 검진하도록 하신 것이라고 했다.

위의 3분의 1을 잘라내고 하나님 앞에 한발 다가섰지만 세상의 끈을 다 놓지 못했다.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으면 지인들이 다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주일에도 예배 끝나자마자 골프장으로 향하곤 했다.

그날도 새벽 2시까지 술을 먹고 들어와 오전 6시에 수영장으로 향했다. 출근 전에 항상 수영을 했다. 그땐 전국 수영대회도 나가고 핀 수영대회도 나갔다. 그날 25m 풀을 60여 바퀴쯤 돌았는데 배영 턴을 하다가 술 때문인지 뒷머리를 바닥에 찧었다. 몸이 마비되면서 물속으로 고꾸라졌다.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다.

마비는 풀렸지만 뒷머리 충격으로 신경이 눌려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의사들은 어느 날 갑자기 전신 마비가 올 수 있다고 했다. 지금껏 큰 문제는 없지만 그 일을 겪으며 또 많은 것을 내려놨다고 했다. “제 자아가 너무 강해요. 저는 진짜 다 내려놨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봐요.”

다음은 자식이 문제였다. 결정타였다. 첫째 아들을 초등학교 4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 보냈다. 아이를 맡은 형에게 어느 날 전화가 왔다. 통제가 안 된다고 했다. 한국으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학교도 안 가고 피시방에서 살다시피 했다. “잔소리하면 가출하고 속이 터져 죽겠더라고요. 부모와 자식 간의 연을 끊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교회에서 ‘아버지 학교’가 열렸고 신 대표는 아버지 역할, 남편 역할 등을 깊이 깨달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아이가 달라지진 않았다. 몸이 아픈 것보다 부자 관계가 잘못된 것이 더 힘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다.

하지만 결국은 그가 변해야 했다. 어느 날 꿈인지, 환상인지 위기에 처한 첫째 아들과 맞닥뜨렸다. 아들은 유리관 속에 거꾸로 처박혀 있었다. 목이 거의 꺾이다시피 한 상태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죽을 것 같았다. 그대로 두면 다시 못 볼 것 같았다. 아이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그를 휘감았다.

그때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아들이 어떤 상태든 아버지인 자신이 품고 사랑해야 한다는 강렬한 마음이 솟구쳤다고 했다. 그 마음은 신 대표를 달라지게 했고 그 마음을 받아들인 것처럼 아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부자 관계는 회복됐고 지금은 하우씨티알에서 일하며 교회의 2부 예배 때 기타 연주로 헌신하고 있다.

신 대표는 시무장로로서 바쁠 수밖에 없고 헌신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 따른 은혜와 보람 또한 크다고 감사했다. 그는 교회의 ‘섬김과나눔 위원’으로서 한 아이의 멘토로 섬긴 것을 큰 기쁨으로 꼽았다. 500명의 섬김과나눔 위원은 교회가 주는 월 10만원으로 독거노인이나 결손가정을 섬기는데 그가 돌본 아이가 장신대 기독교 교육학과에 들어가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신 장로는 “돌이켜 보면 감사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며 “특별히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게 하시고 오륜교회와 김은호 목사님을 통해 훈련받게 하시니 부족한 게 없다”고 말했다.

글·사진=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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