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 목사의 생각대로] <1> 나의 고백록

국민일보

[송길원 목사의 생각대로] <1> 나의 고백록

입력 2023-05-2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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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자치지구 예리코(여리고) 시내에 있는 삭개오의 돌무화과나무.(눅 19:4) 개역한글판 성경에는 뽕나무로 번역돼 있다. 국민일보DB

나는 한때 무지렁이를 연체동물 지렁이 이름으로 알았다. 마치 유정란 무정란 하듯 무지렁이 유지렁이로 말이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무식했겠는가.

“니고데모가 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부자였습니다. 그는 세리였습니다. 예수님을 몹시 보고 싶어했습니다. 듣자 하니까 예수님이 그 동네를 지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키가 작았던 니고데모가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뽕나무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교인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는 잘 안 들려 그러는 줄 알고 핏대를 올려 소리쳤습니다. 니고데모가 재빨리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드디어 교인들이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습니다.”

사전은 이렇게 무지한 사람을 무지렁이라 부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 또는 ‘헐었거나 무지러져서 못 쓰게 된 물건’을 이른다. 내가 그렇게 무식했다. 그 때문에 나는 스스로 ‘무지렁이 목사’라고 소개했다. 출신 학교도 변변찮고 촌놈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서울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했다. 거기다 금수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당연히 지렁이를 반길 이유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스라엘의 세 번째 족장 야곱에게 꽂혔다. 그가 한 짓은 단무지(단순 무식 지랄)였다. 성경은 이런 야곱을 주저 없이 ‘지렁이 같은, 벌레 같은 야곱’(사 41:14)이라 불렀다. 딱 그에게 맞는 이름이었다. 하나님 나라에 별반 가치 없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그런데 아니었다. 알면 알수록 지렁이는 신비였다. 지렁이 종(種)만 6000여종이나 된다. 더구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자이언트 지렁이는 길이 3m에 무게가 400~450g이나 된다고 한다. 크기만이 아니었다. 지렁이는 자웅동체다. 한 몸에 암컷과 수컷의 생식기가 있다. 짝짓기는 두 개체가 각각 보관한 정자를 교환하면서 이뤄진다.

그가 하는 일은 따로 있었다. 지렁이가 먹이를 찾아 만든 굴(구멍)은 큰비가 쏟아질 때 물을 가두는 저수지 구실을 한다. 토사 유출이나 산사태를 막아 준다. 지렁이가 먹은 썩은 잎이나 죽은 뿌리, 흙 속의 미생물로 토양을 살찌운다. 땅의 ‘파수꾼’인 셈이다. 지렁이가 있어 생태계가 생명을 이어간다. 모든 인간이 가장 무가치해 보이는 지렁이에게 큰 신세를 지고 있는 셈이다.

앞의 무지렁이 목사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그제야 틀렸다는 것을 눈치챈 목사가 얼른 소리쳤습니다. 그때 마침 삭개오가 나타났습니다. 뽕나무에 올라간 니고데모를 보고 소리쳤습니다. ‘야, 그건 내 자리인데 왜 네가 올라가 있는 거야. 빨리 내려와라.’ 그때 교인들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웃고 있는데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는 거예요. ‘니고데모는 왜 뽕나무 위에 올라갔대요?’”(마지막 대목에서 웃음이 ‘빵’ 터지지 않는 이들도 무지렁이일지니…) 나는 이야기의 반전을 지렁이에게서도 듣는다.

“새끼 지렁이가 말한다. ‘엄마, 아빠는 요즘 통 만나볼 수가 없어요.’ 당혹스러워하던 엄마 지렁이가 슬픈 표정을 감추고 대답해 준다. ‘얘야, 아빠는 어부와 함께 바다 사냥을 떠났단다.’”

이런 재치를 가진 지렁이야말로 ‘지룡(地龍) 토룡(土龍)’이라 불러 마땅하지 않나. 성경은 말한다. “지렁이 야곱아, 이스라엘 사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너를 구원하시는 분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시다.”(사 41:14, 우리말성경)

지렁이 야곱을 쓰신 하나님이 무지렁이 목사를 왜 못 쓰시겠는가. 늦었지만 지렁이 대변인 역할로 지렁이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참이다. “지렁이 함부로 대하지 마라.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송길원 목사
약력=고신대 신학과·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리폼드신학교 졸업, 고신대 명예 보건학 박사, 하이패밀리 대표, 청란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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