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예수] “전역 날 오는 것처럼 통일은 진행중… 예수님도 곧 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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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예수] “전역 날 오는 것처럼 통일은 진행중… 예수님도 곧 오신다”

통일 시대 준비하는 군선교사
이은성 육군 필승교회 목사

입력 2023-05-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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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선교사로 통일 한반도의 북한 선교를 연구하는 이은성 필승교회 목사.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난 이 목사는 “아주 작은 것부터 복음 통일을 기대하고 준비해 통일의 그 날 하나님의 도구가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장진현 포토그래퍼

이은성(38) 목사에게 어린 시절, 교회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곰팡이 냄새다. 개척교회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에게 교회는 익숙하고 당연한 곳이었다. 교회 장의자는 뛰어넘는 놀이를 하는 허들이었고, 때로는 미로 놀이를 하는 도구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교회가 규모 있게 건축된 교회가 아니라 지하실 냄새 가득한 작고 작은 개척교회라는 자각이 생겼다. 그리고 인생의 목표는 성공이고 돈을 잘 버는 것이 됐다.

이 목사는 군선교사로 육군 30기갑여단 필승교회를 섬기며 숭실대 기독교통일지도자훈련센터 초빙교수로 통일 이후의 북한 선교를 연구하고 있다. 성공만을 꿈꾸던 청년이 통일 이후 북한 선교를 꿈꾸는 군선교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난이 싫고 창피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나고 자란 이 목사는 중학교 때부터 식당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집에서 도저히 용돈을 얻어 쓸 형편이 안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릴 때는 개척교회의 사역 현장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성장하면서 이것이 다른 말로 하면 가난이란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친구들이 아버지가 목사님이라는 것을 알고 교회 한번 가보자고 했을 때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따돌렸다. 그는 “가난 때문에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을 고민하게 되고, 불편하고 기다리고 눈치 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사춘기 시절부터는 가난이 너무나 싫었고, 그저 당연한 교회와 당연한 하나님보다 실질적으로 내게 도움을 주는 것은 돈이고, 내게 없는 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이 목사는 어릴 때부터 당연히 신앙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는 확신은 없었다. 충북대에서 시스템공학을 전공한 이 목사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평범한 크리스천이 되고 싶었다.

북한군이 되다

2006년 입대일 새벽 훈련소로 출발 직전 어머니 박말숙 사모와 함께한 모습.

인생의 전환점은 군대였다. 대학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한 그는 “조국을 위해서 군 생활 멋지게 할 사람을 찾는다”는 말에 얼떨결에 손을 들었다.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아 간 곳은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KCTC)’. 부대 입구에는 ‘적보다 강한 적’이라는 구호가 붙어있었다. 그는 “북한 군복을 입고 주적인 북한군보다 더 강한 북한군이 돼서 국군 부대와 모의 전쟁을 치르는 적군 역할을 하는 부대였다”고 설명했다.

군 생활 내내 월요일 새벽에 출발해 2주간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일정이 계속됐다. 훈련 때마다 적군을 얼마나 많이 사살했느냐에 따라 등수가 매겨진다. 상위에 들면 휴가증이 나오고 그렇지 못하면 다시 훈련이 시작된다. 한 번은 23명을 사살하고 ‘대대 영웅’ 칭호를 받고 9박 10일 휴가를 나가기도 했다. 그 후 목표는 오로지 ‘적군을 많이 죽여서 휴가 나가자’였다.

이 목사는 군대가 편했다. 입대 전 잘 살았든 못 살았든 모든 장병은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밥을 먹는다. 모두가 동일 선상에서 경쟁하고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허무함 속에 하나님을 만나다

훈련소 때는 물론이고 자대 배치 후에도 교회 출석은 당연했다. 하지만 부대에서 인정받기 위해 훈련에 대한 욕심이 커질수록 주일에 교회에 나가는 시간까지 아까워졌다. 월요일 새벽마다 출발하는 훈련을 나가기 전 가장 중요한 건 총기 점검이었다.

이 목사는 “한 발이라도 막힘 없이 잘 나가도록 총을 닦고, 또 지형을 외우고 마인드 컨트롤도 해야 했다”면서 “시간이 부족하고 아까웠다”고 말했다. 그러다 점점 교회에 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더 이상 기도하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담배도 너무 당연하게 피웠다. 부대의 누구도 이 목사가 크리스천이라는 걸 몰랐을 정도였다.

그렇게 변한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 채 말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내가 뭘 위해 열심히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허무함이 몰려왔다. 마지막 훈련을 마치고는 그 허무함은 극에 달했다. 그날 밤 모포를 뒤집어쓰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하나님이었다.

“휴가증도 사회 나가면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고 남한테 인정받는 것도 그때뿐이잖아요. 어떤 변화 속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음을 고백하게 됐어요. 변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내 인생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다른 것에 한눈을 팔다가 이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거예요.”

이 목사는 “군대에서 달려온 시간과 감정이 인생의 축소판임을 알게 됐다”면서 “인생도 정작 하나님 없는 마지막 죽음 앞에서 허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한번 신앙을 붙들었다. 변하지 않는 최고의 가치를 붙들었다.

군선교를 꿈꾸다

이 목사는 제대 후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처럼 180도 변했다.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최우선 순위가 됐다. 그리고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라면 반드시 부딪혀야 하는 군대가 중요한 선교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군대에서 ‘인생의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저도 군대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방황도 했지만, 끝내 가장 소중한 것을 붙든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도 이런 경험을 전하고 싶었어요.”

지난해 훈련장을 찾아 기도하는 이 목사.

이 목사는 군대 안에서 선교하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방법을 수소문했다. 군종장교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신학대를 다녔어야 했고, 이 목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민간 군선교사밖에 없었다. 이 목사는 우선 2012년 총신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재학 중에는 동기들에게 군선교사가 될 거라고 얘기하고 다녔고, 시간 나는 대로 현직 군선교사들을 찾아다니며 조언도 구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젊은 사람이 왜 군선교 사역을 하려 하냐’며 하나같이 말렸다. 군선교사는 자비량 선교사라 군종장교와 달리 급여나 연금 보장도 없다. 대부분 은퇴 이후에나 선택하는 길이었다.

하지만 꿋꿋하게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신대원 재학 중에는 국방대학 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하며 군인교회 사역을 맛보고, 졸업 후 목동제일교회(김성근 목사)의 파송을 받아 2017년부터 지금까지 필승교회를 섬기고 있다. 이 목사는 “군 장병은 크리스천이 3% 남짓으로 미전도종족과 마찬가지”라며 “재미있는 것은 한 명이 변화되면 24시간 동고동락하는 군대에서는 전도하기 가장 쉽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군대 와서 하나님을 만난 용사(장병)가 분대원을 데리고 교회 와서 제게 ‘분대원들 전도해왔어요’ 하며 환하게 웃는 미소를 잊지 못한다”면서 “믿지 않는 용사가 은혜받고 주말을 피해 휴가 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일 선교를 준비하다

이 목사는 군선교를 위해 기도하면서 ‘북한에도 복음이 전해질 수 있다면 북한 군인들이 중요한 전도의 대상’이라는 비전을 품게 됐다. KCTC에서 북한군 역할을 하며 군 생활을 한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이 목사는 “통일이 된다면 가장 효과적으로 하나님을 알릴 수 있는 곳은 젊은이들이 모여 있고, 공허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많은 곳, 역시 군대가 아닐까 싶다”면서 “통일 이후 일정 기간 북한군이 존속할 텐데 그 기간이 한반도 군선교의 최적기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먼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이 목사는 그때를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군선교사로 사역하면서 2019년 숭실대 대학원 기독교통일지도자학과에 입학해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지난해에는 ‘북한군 간부 출신 북한 이탈 주민의 주체사상 극복과 복음 수용의 과정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목사는 “통일 시대에 가장 선용 될 민족의 선교지 중 하나는 군대라고 확신한다”면서 “그 기회의 때를 준비하고 연구하며 사람들에게 비전을 심어주고 저와 같은 비전을 가진 사람들을 발굴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한 전역자가 필승교회 주일 예배를 마친 뒤 ‘전역 날이 오는 것처럼 예수님도 곧 오신다’고 적힌 배너 옆에서 이은성 목사와 군종병들의 축하를 받으며 기념촬영을 했다.

“필승교회 입구에는 ‘전역 날이 오는 것처럼 예수님도 곧 오신다. 나는 예수님이 언제 오셔도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는가’라고 적힌 배너가 있습니다.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는 전역자는 이 배너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군대의 전역처럼 한반도에는 통일이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통일은 언제 올지 모르지만 지금도 통일이 진행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작은 것부터 복음 통일을 기대하고 준비해 통일의 그 날 하나님의 도구가 되길 원합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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