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인체 실험… 예순 넘긴 공학자의 에베레스트 등정

국민일보

극한의 인체 실험… 예순 넘긴 공학자의 에베레스트 등정

송도바이오융복합센터장 한인석 박사

입력 2023-05-22 21:13
반지형 바이오센서 '바이탈링' 착용
길병원 의료진이 원격 건강 체크
정상 정복 시기 결정 위한 정보 제공
"바이탈링, 질병·사고 예방도 기여"

한인석 박사가 에베레스트 등정을 앞두고 베이스캠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언 교수 제공

예순을 넘긴 한 공학자가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섰다. 에베레스트 정상 도전에 더해 공학자답게 색다른 실험까지 수행해 화제다. 손가락에 생체 신호 모니터링기기(바이탈링)를 끼고서 멀리 떨어진 한국의 의료진과 원격으로 건강 상태를 체크하며 극한 환경의 산을 오르는 것이다.

주인공은 송도바이오융복합센터장을 맡고 있는 한인석(65) 박사다. 미국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초대 총장을 역임한 한 박사는 아시아 최초 미국 50개주 최고봉, 남극과 아프리카 등 6대륙 최고봉 등정에 성공한 산악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전문 산악인조차 일생에 한 번 오르는 것 자체가 큰 모험인 히말라야 최고봉인 해발 8849m 등정에 도전장을 던진 것.

아무리 평생 산악인으로 단련된 몸이라지만 고령이라는 변수를 무시할 수 없다. 이에 가천대 길병원 의료진이 도우미로 나섰다. 연세대 공대 교수들과 협동으로 개발한 반지형 바이오센서인 ‘바이탈링’을 한 박사의 손가락에 착용케 하고 거기서 나오는 생체 신호를 실시간 확인해 컨디션 조절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높은 고도에선 희박한 산소 때문에 발생하는 저산소증이 위협적이다. 따라서 한 박사의 혈중 산소 농도, 심장 박동, 호흡, 체온 등을 모니터링하는 것은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 아울러 신체 상태와 스트레스 지수, 수면의 질 등을 감지해 정상 정복 시기를 결정하는데 건강 관리의 팁을 줄 수 있다.

이언 가천대 길병원 신경외과 명예교수는 “이런 모든 일이 세계 최고봉 등정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며 “다행히 수년 전 에베레스트 중턱에 5G통신 기지국이 설치돼 원활한 생체 정보 수신이 가능해졌다”고 전했다.

이언 가천대 길병원 명예교수가 지난 15일 한 박사와 화상 통신하는 장면. 이언 교수 제공

지난 3월 초 에베레스트 등정을 위해 네팔로 떠난 한 박사 등 등정단은 그간 해발 5000m 베이스캠프에서 길병원 의료진과 원격으로 수시로 통신해 왔다. 그리고 지난 15일 오전 9시쯤, 길병원 원격항공운항센터 내 화상 캠에 한 박사의 검게 그을린 얼굴이 나타났다. 그의 표정과 모니터에 나타난 각종 생체 정보를 확인한 이 교수는 손을 들어 안부를 물었다. 한 박사 역시 바이탈링을 낀 손가락을 보여주며 자신감을 표시했다.

출국 직전 인천국제공항에서 한 박사와 이 교수가 손가락에 낀 바이탈링을 보여주는 모습. 이언 교수 제공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네팔에 입국하자마자 코로나19에 걸려 산소 포화도가 74까지 떨어지는 등 컨디션 난조로 등정을 장담할 수 없었다. 이에 이 교수는 한 박사의 수신된 생체 정보를 바탕으로 건강관리법을 조언했고 생체 지표는 서서히 회복됐다. 이날 한 박사의 산소 포화도는 96.5까지 회복된 상태였다. 심장 박동과 호흡 역시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다. 이 교수는 “현재 건강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면서도 한 박사에게 숙면을 위한 조치를 취하라고 당부했다. 최근 그의 수면 패턴 분석 결과 수면의 질이 낮게 평가됐기 때문이다. 약 10분간 이뤄진 두 사람의 비대면 만남은 한 박사의 성공적 에베레스트 등정을 다짐하며 마무리됐다. 이후 한 박사의 바이탈링으로 측정된 건강 정보는 24시간 스마트폰을 통해 클라우드로 전송되고 길병원 의료진이 지속 모니터링하게 된다. 이 교수는 “한 박사가 네팔에서 코로나에 걸려 걱정을 많이 했지만 생체 정보를 종합적으로 평가한 결과, 지금은 모두 정상 회복된 상태여서 날씨 변수가 없는 한 에베레스트 등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한 박사는 곧 정상 공격에 나설 예정이다.

반지형 생체 신호 모니터링기기인 바이탈링. 이언 교수 제공

이언 교수가 공동대표인 이메디헬스케어와 지티에이컴이 개발한 바이탈링은 초정밀 바이오센서와 이를 분석하는 인공지능(AI)알고리즘, 클라우드 서비스 등이 탑재돼 있다. 체온과 심장 박동수, 호흡수, 혈중 산소 농도, 심박 변이도, 활동량, 스트레스 지수, 수면 등을 24시간 실시간 측정한다. 착용자의 손가락 동맥에서 측정된 생체 정보는 스마트폰을 통해 클라우드로 전송되고 AI 알고리즘을 통해 수면 장애, 스트레스, 신체 회복 상태 등 다양한 건강 정보로 탈바꿈해 보여준다. 최근 연세대와 공동으로 혈압, 탈수, 전(前)당뇨를 체크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로 개발 중이다. 100m 방수가 지원돼 일상생활에서 편리하게 쓸 수 있다. 낙상 알림 기능도 장착돼 있다. 조만간 출시를 앞두고 시스템 고도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 교수는 22일 “디지털헬스케어 시대 바이탈링 같은 웨어러블(몸에 착용) 모니터링기기는 에베레스트 같은 극한 환경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널리 사용돼 질병과 사고 예방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바이탈링이 있다면 머나먼 타국은 물론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이나 홀로 지내는 고령자 등의 건강을 살피는 것은 물론 요즘 문제 되고 있는 고독사 방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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