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흰머리에 대하여

국민일보

[돋을새김] 흰머리에 대하여

이영미 영상센터장

입력 2023-05-23 04:07

기억하는 한 엄마는 언제나 염색을 했다. 때가 되면 거울 앞에서 가르마마다 독한 배합 염색제를 펴발랐다. 그러고 나서 며칠은 머리를 긁었다. 손톱 대신 손끝으로 살살, 벌게진 두피를 달래듯 문질렀다. 그 시절 엄마는 “염색은 환갑까지”라고 말했다. 기한은 일흔 살로, 다시 여든 살로 미뤄졌다. 엄마가 염색을 관둔 건 코로나19가 터진 뒤였다. 산책길에 만난 동네 할머니들 머리도 하얘지던 때였다.

엄마의 흰머리는 장점이 많았다. 두피색과 차이가 적어서 성긴 숱은 덜 도드라지고, 조명 켠 듯 안색도 밝아졌다. 하지만 예쁘다고 아무리 말해도 엄마는 안 믿었다. 백발이 ‘나는 노인입니다’ 광고판 같다나. 엄마는 한때 검은 머리를 찰랑이던 소녀가, 풍성한 펌머리의 젊은 엄마가 저런 ‘허연 머리통을 단 노인네’가 된 게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고 했다. 이게 철학자가 말한 ‘젊은 시절 몸을 등한시하면서도 몸과 더불어 나였다가, 몸으로 늙어가면서 몸을 적대시하는 나가 된다’(‘늙어감에 대하여’)는 그런 소외의 감정일까.

엄마를 보며 염색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나의 노년에는 노화에 익숙해질 시간을 주자. 그런 결심이었다. 생각해보라. 어제까지 까만 머리가 오늘 흰머리 자아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나. 언젠가 충분히 늙으면 염색을 그만두겠다고 말하지만 거짓말이다.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노화가 괜찮은, 충분히 늙은 날 같은 건 없다. 엄마를 보니 그렇다. 늘어나는 흰머리와 주름은 매일 보고, 매일 놀라고, 매일 가슴 아픈 게 맞다. 거울 앞에서 저게 나야, 매일 외워둬야 한다. 그래야 늙어가는 몸을 분열 없이 자아에 통합시킬 수 있다.

결심은 했지만 흰머리를 두고 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쉬웠다면 다들 그렇게 열심히 염색을 할 리가 없다. 따로 보면 근사한 흰머리가 검은 머리와 섞이면 어정쩡한 존재가 된다. 후추 뿌린 소금 같다고 할까. 어쩐지 인상까지 어수선해진다. 나는 모양새도 들쑥날쑥. 특정 구역에 몰려나고, 뿌리부터 한 움큼씩 하얘진다.

처음 흰머리를 고집하며 꿈꾼 건 재닛 옐런(미국 재무장관)과 크리스틴 라가르드(유럽중앙은행 총재)의 은발이었다. 어림도 없는 얘기였다. 그런 은발이 되려면 10년 넘게 기다려야 한다. 그때가 된다고 옐런처럼 보일 리도 없다. 중요한 건 빛나는 은발이 아니라 지위니까. 그러고 보면 흰머리의 수용은 사회적 연령과 조직 내 위계에 따라 결정된다. 어떤 이의 흰머리는 권위와 명성을, 다른 이의 흰머리는 허약함과 노화의 신호를 보낸다.

여성의 흰머리라면 조금 더 복잡하다. 코로나 사태 때 캐나다의 50대 여성 앵커가 염색을 하지 않은 채 TV 뉴스를 진행하다가 해고된 일이 있었다. 신임 대표가 “누가 흰머리를 괜찮다고 했느냐”고 노발대발한 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졌다. 직전 앵커는 은발 날리던 70대 할아버지. 당장 “남자는 되고 여자는 안 되냐” 반발이 터졌다. 캐나다는 내각의 남녀 비율이 엇비슷한 성평등의 나라다. 때로 문화적 잣대가 바뀌는 게 정치적 변화보다 어려운 일이다.

염색이냐, 탈염색이냐. 고민을 거듭하다 꼼수를 생각해냈다. 흰머리 대신 검은 머리를 염색하자. 흰 머리카락은 그대로 두고 대신 검은 머리카락을 옅게 만들어 흰머리를 덜 눈에 띄게 만드는 전략이다. 탈모인이 머리를 밀어버리는 것과 유사한 접근법이랄까. 그렇게 내 흰머리는 아슬아슬 흰색 그대로 살아남았고, 나는 흰머리를 괴롭히지 않겠다는 오랜 결심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글쎄, 당분간, 기술적으로는. 언젠가 은발이 된다고 옐런처럼 보일 리는 없다. 그래도 내가 할머니라는 사실이 낯설지 않은 할머니가 되는 데는 성공할 수 있을 거 같다.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