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심지 않은 나무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심지 않은 나무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

입력 2023-05-24 04:05

길에서 접하는 모든 건 업무와 연결된다. 바닥의 재료와 색도 그렇지만 길의 폭과 방향과 경사와 연결, 길 좌우로 접하는 공간과 담장의 높이나 재질까지. 길에서 느끼는 감흥은 공원에도 똑같이 대입되기 때문이다. 특히 삭막한 도시의 길에서 만나는 초록 식물은 각별하다. 공원에서는 주연배우지만 길에선 사람과 차의 통행에 밀려 조연급으로 업신여겨지기에. 척척 심겨져 시원한 그늘을 주는 가로수도, 아기자기한 관목과 꽃으로 구성된 가로정원도, 벽과 담을 타고 오르는 덩굴의 초록빛도 길과 한껏 어울린다. 지금 거리엔 마로니에와 감꽃이 피고 쥐똥나무꽃의 짙은 흰 향기가 넘친다.

길에서 사람이 심지 않는 나무를 만나는 건 더 특별하다. 집 앞 빌딩 모퉁이에는 느릅나무 두 그루가 4년째 사는데, 아무도 심지 않은 녀석들은 빌딩주의 암묵적 허락하에 서서히 몸집을 불리는 중이다. 인근 관광안내소 좌우로도 느릅나무가 터를 잡았는데 올봄 오른쪽 녀석은 톱질을 당했다. 눈에 띄는 자리였기에 예상했건만, 아직도 버티며 재기를 노린다. 동네 카페 앞에 뿌리 내린 뽕나무가 생존하는 건 손님께 사랑받는 맵시와 서늘한 그늘 덕.

쓰임새 외로 좀체 곁을 주지 않는 길에서 심지 않은 나무가 살아남는 비결은 위치 선점과 순발력, 강인함과 멋이다. 통행에 불편이 없도록 벽이나 모서리에 잘 붙어야 하는데 너무 커지면 도리어 잘릴 수 있어 안심은 금물. 싹이 트면 재빨리 형태를 갖추는 순발력도 필요하고, 비료나 물은 언감생심이니 홀로 강인하게 커야 한다. 잎은 깔끔해야 하고 수형은 맵시 있어야 하며 벌레도 금기다. 느릅나무는 맵시 있는 수형과 귀여운 잎이, 뽕나무는 노릇한 가지와 말끔한 잎이 매력적이다. 오동나무나 가죽나무가 외면받은 건 큰 낙엽과 지저분한 이미지 때문이었다. 이렇듯 도시와 길에서 만나는 심지 않은 나무의 삶은 이방인처럼 신산하다. 너그러움 가득한 포용성 있는 도시가 결국 지속 가능할 터다.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