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훈의 도시건축 만보] 도시의 품격

국민일보

[이경훈의 도시건축 만보] 도시의 품격

입력 2023-05-24 04:02

주민을 계도 대상으로 보는 아파트…
우리가 살고 있는 후진적 도시 문제의 축소판

K는 자리에 앉으면서부터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가을에 이사한 아파트가 문제였다. 그가 주상복합 아파트에 전세로 이사한 것은 아내의 성화 때문이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연립주택 빌라에서만 살던 그의 아내는 주차가 편리하고 체련장과 사우나가 딸려 있고 정원이 널찍한 아파트를 원했다. 대리석으로 치장된 로비에 황동 장식 엘리베이터가 으리으리했다. 집안 전구도 갈아주고 쓰레기 분리수거 걱정도 없었다. 정장을 차려입은 안내데스크 직원들이 어찌나 열심히 인사를 하는지 무안할 지경이라고 했다. 호텔식 서비스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어서 “집에는 언제 가나?”라고 아내에게 농을 건넬 정도였다고 한다. 대신 관리비가 비쌌다. 일반적인 아파트에 비해서 비싸고 전에 살던 빌라에 비하면 훨씬 비쌌다. 그래도 ‘호텔식’ 서비스의 대가이며 또 언제 이런 데 살아 보겠냐는 마음으로 계약기간 이년만 호사를 누리기로 마음먹었다.

문제는 이사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시작됐다. 금속 마감에 간접조명이 은은한 근사한 엘리베이터에 잡다한 안내문이 붙기 시작했다. 의례적이고 중요하지도 않은 내용이었다. 애완견 배변 처리나 쓰레기 배출 시 유의사항 같은 뻔한 것으로, 유쾌하지 않은 사진이 첨부된 것도 있었다. 군대 문서를 흉내 낸 형식에 글자는 알록달록 색을 바꿔 품위라고는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더구나 엘리베이터에는 여러 안내문을 대신 할 수 있는 최신형 모니터가 장착돼 있었는데도 말이다. 어떤 호텔이 이렇게 근사한 엘리베이터를 망치냐고 항의해봤지만, 친절한 미소와 함께 할 일을 하고 있다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친구는 품격 있는 공간을 불편해하고 강박적으로 뭔가를 덕지덕지 붙이는 습성을 ‘무당집 전통’이라고 이름 붙였다. 평소에도 간판에 가려 건물이 보이지 않는 거리의 어지러운 경관을 비판하던 친구였다. 단아하고 정갈한 조선백자의 전통이 있는데도 공간에만 이르면 천박해진다는 것이었다.

K를 폭발시킨 건 아침저녁으로 나오는 방송이었다. 엘리베이터 벽보도 미덥지 않았던지 자질구레한 공지사항을 방송으로 다시 전달했다. “아! 아! 이장입니다…”로 시작하는 옛 시골 마을 확성기 방송처럼 들렸고 기숙사나 수용시설에 있는 느낌이어서 항의해 보았지만, 원하는 입주민도 있다며 다시 미소와 함께 묵살당했다고 한다. 아파트의 방송은 긴급 재난에 대비한 비상용 설비인데 가장 사적인 공간을 시도 때도 없이 침범당한다고 생각하는 K에게 방송은 층간 소음보다 더 심한 스트레스였다. 더구나 주민을 존중하기보다 계도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일제와 군사독재 권위주의 시절의 찌꺼기처럼 느껴지기에 더욱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친구의 긴 탄식이 불평의 끝을 맺었다. “그 사람들 호텔에 가보기는 했나 모르겠다.”

친구의 불평을 흘려들을 수 없었던 것은 그의 아파트가 우리가 사는 도시 문제의 축소판이며 하나의 알레고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시대가 변해 시민의 의식과 취향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시민을 계도의 대상으로 여기며 시민보다 촌스러운 감수성으로 규제 해제를 밀어붙여 경관을 어지럽히는 현실이 겹친다. 육백년 역사 도시에 산지가 많은 서울이지만 층수 제한을 풀어 한강변에 70층 아파트를 짓게 한다고 한다. 꽉 막힌 도로를 보면서도 여전히 보행자보다 자동차 중심으로 도시를 계획한다. 방음벽도 모자라 방음터널로 도로를 휘감아 흉물스러운 경관을 만들어낸다. 시민 간의 소통보다는 단절과 고립을 촉발하는 폐쇄적인 건축물과 주거단지를 짓는다.

도시에 대한 이해가 시민 지성의 수준에 비해 후진적이고 천박하며 시대착오적인 관리자에게 미래의 계획까지 맡기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일까? 친구는 계약기간이 끝나는 대로 연립주택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우리는 돌아갈 도시도 없지 않은가. 친구의 푸념이 곧 나의 것이 됐다. “그들은 도시에 살아 보기는 한 걸까?”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