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금지’에 대하여

국민일보

[청사초롱] ‘금지’에 대하여

봉달호(에세이스트·편의점주)

입력 2023-05-24 04:02

‘아니요, 그건 빼주세요’라는 책에 공저자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 출판사는 원래 ‘생각만 해도 머리가 띵할 정도로 좋아하는 음식’을 주제로 시리즈 도서를 내는데, 만우절 특집으로 ‘싫어하는 음식’ 앤솔러지를 내자고 한 것이다. 오이, 고수, 팽이버섯, 닭, 민트초코…. 각자 싫어하는 음식 하나씩 떠올려 이야기를 풀었는데, 어느 작가가 ‘노키즈존’을 소재로 삼은 것을 보고 머리가 띵해지는 느낌이었다. 음식은 아니지만 음식과 관련해 분명 ‘싫어하는 무엇’일 수 있겠구나.

최근 어느 국회의원이 어린 자녀를 데리고 나와 노키즈존을 없애자는 기자회견을 하고, 어느 지역에선 노키즈존을 금지하는 조례안을 내겠다고 하면서 노키즈존이 화제가 됐다. 저마다 노키즈존을 성토하는 의견을 쏟으며 공론의 장이 떠들썩한데, 여론조사를 해보면 노키즈존에 찬성하는 의견이 70%란다. 거기서 이 사안이 지닌 성격을 가늠할 수 있다. 이름 내걸고 노키즈존을 찬성하는 사람은 드물어도 ‘남의 아이들’ 때문에 내 식사와 휴식이 방해받는 것이 내심 싫은 사람은 많은 것이다.

자영업자로서 노키즈존에 대해 말하자면 ‘오죽했으면’ 하는 직업적 동질감을 우선 갖는다. 편의점에서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상품을 조몰락거리는 아이들 때문에 한숨이 나올 때가 많은데, 뜨거운 음식물이 오가는 식당이나 카페 주인장으로선 안전 문제도 있고 다른 손님들의 편익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2살, 3살 남매를 키우는 아빠이기도 해서, 아이를 동반했다는 이유로 어딘가에서 입장을 거절당한다면 서글픈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다행히 우리 가족은 아직 노키즈존을 경험하지는 못했다.

혹자는 어른 탓을 한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함부로 떠드는 아이는 부모가 충분히 제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꼭 “내가 키워봐서 아는데”라는 꼰대 같은 단서가 붙는다. 하지만 나도 키워봐서 아는데, 아무리 부모가 타일러도 훈육이 되지 않는 나이가 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그렇다. 결국 부모가 식사하는 시간에 아이들에게 휴대폰 영상을 보여주면서 ‘세상의 평화’를 도모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 또한 아이에게 바람직한 행위는 아닌 것 같아 외식 자체를 꺼리게 된다. 결과적으로 “아이는 부모 하기 나름”이란 주장은 아이랑 말 통하는 나이가 될 때까지 너희는 외식 따위는 꿈도 꾸지 말라는 소리 같다. 그런 세상에서 “아이를 낳으세요”라고 재촉하고 있으니 이 또한 말 같지 않은 말 아닌가.

이해 못 할 건 아니지만 노키즈존을 만드는 사람도 좀 극성스럽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겠다는 사람 또한 비슷한 수준으로 엉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종의 차별금지법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무슨 일만 생기면 ‘금지’를 쏟아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노키즈존은 사라지겠지만 그래서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차별의 ‘행위’를 없앴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진정으로 고쳐야 할 것은 차별의 ‘의식’일 텐데 말이다.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으면서 해결했다고 믿는 허위의식에 갇혀 다른 곳에서 다른 차별이나 배제를 낳고 있을 것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아이들은 원래 그렇다’는 이해와 ‘타인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절제는 함께 균형을 맞춰야 할 양쪽 바퀴와도 같다. 그리고 변화는 “당신이 먼저 생각을 바꾸세요”라는 강박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타인의 입장에 서보는 연습과 대화의 축적을 통해 가능한 일일 테다. 배려도 학습의 결과 아닐까. 그러나 우리 사회엔 차분히 설득을 구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네 생각은 틀렸어”라는 사람만 흥성댄다. 거기에 키즈금지존이 있고, 키즈금지존 금지법이 있다.

봉달호(에세이스트·편의점주)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