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웅빈 특파원의 여기는 워싱턴] 극우色 트럼프 VS 디샌티스… 미 공화發 ‘문화 전쟁’ 번지나

국민일보

[전웅빈 특파원의 여기는 워싱턴] 극우色 트럼프 VS 디샌티스… 미 공화發 ‘문화 전쟁’ 번지나

전웅빈 워싱턴 특파원

입력 2023-05-24 04:07
공화당 대선 주자 중 한 명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국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항마로 꼽히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지난 13일 미국 아이오와주 시더래피즈에서 열린 공화당 리셉션에 참석해 연설하는 모습. 로이터·AFP연합뉴스

“공화당 대선 경선에 참여한 팀 스콧 상원의원에게 행운을 빈다. 그는 당선 가능성이 없는 디생크모니어스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스콧 의원을 격려하면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저격했다. 디생크모니어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디샌티스 주지사에게 붙인 별명이다. ‘위선적으로 경건한 체한다’는 의미의 ‘샌크모니어스’(sanctimonious)를 빗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는 25일 디샌티스 주지사의 공식 대선 출마 선언을 앞두고 그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닮은꼴’ 양강의 문화 전쟁

트럼프 전 대통령과 디샌티스 주지사는 미국 공화당의 대선 경선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둘은 동성애, 낙태, 총기, 인종, 이민 문제 등에 보수적 색채의 강경 메시지를 발신하는 등 이념적 차별성이 크게 없다.

실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우리는 아이들에게 비판적 인종 이론이나 성별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모든 학교나 프로그램에 대한 연방 기금을 삭감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온라인매체 악시오스는 트럼프 캠프 공약을 분석한 뒤 “교사의 종신 재직 기간을 폐지하는 학교에 보상을 주고, 많은 학교에서 다양성과 형평성, 포용 프로그램을 제거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디샌티스 주지사도 ‘문화 전쟁’에 앞장서며 보수 적자(嫡子) 이미지를 구축해 왔다. 그는 지난 1월 플로리다 공립 고등학교에서 ‘미 흑인 역사’를 가르치는 것을 금지했고, 지난해 3월에는 초등학생에게 동성애 등 성 정체성 교육을 금지하는 ‘돈 세이 게이’(게이라고 말하지 말라) 법에 서명했다. 학교와 직장에서 인종과 성에 대한 논의를 제한하는 내용의 이른바 ‘워크 중단 법안’(Stop Woke Act)도 추진했다.

이 때문에 미 최대 흑인 인권 단체인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는 지난 20일 “우리는 플로리다주에 공식 여행 주의보를 발령한다. 플로리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다른 유색인종 공동체의 기여와 이들이 직면한 어려움을 평가절하하고, 무시한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NAACP는 “흑인 역사를 지우고, 플로리다 학교의 다양성, 형평성, 포용 프로그램을 제한하려는 디샌티스 주지사의 공격적인 시도에 대한 직접적 대응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지난달 주 정부의 별도 허가 없이 총기를 소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에도 서명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발동한 타이틀 42 효력이 해제되자 플로리다주 방위군 800명가량을 텍사스 국경에 파견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디샌티스 주지사의 이 같은 활동이 정통파 보수층 유권자 표심을 겨냥한 전략이라고 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현재 각종 지지율 조사에서 당내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보수층 내부에선 대선사기 주장이나 여러 건의 법 위반 사건 기소로 차기 대선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신선한 젊은 보수’ 이미지를 구축해 트럼프 전 대통령을 대체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려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측도 이를 경계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후원하는 슈퍼 PAC인 ‘MAGA’는 디샌티스 공격 광고에 1530만 달러를 지출했다. 이는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사용한 자금(1500만 달러)보다 많은 금액이다. 디샌티스 측은 “트럼프가 우리를 위협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문제는 양강 후보가 당내 경선 과정에서 극우 색채를 강화하면서 내년 대선 때 ‘문화 전쟁’ 이슈가 재차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다. 공화당 경선 발 문화전쟁이 미국을 휩쓸 수 있다는 것이다. NBC 뉴스는 “미국은 이미 문화전쟁으로 교착상태에 빠져있다”며 “정당별로 의견이 완전히 갈려 있다”고 지적했다.

경쟁 후보 난립 변수

스콧 의원이 이날 공화당 경선에 합류하면서 주자는 트럼프 전 대통령, 니키 헤일리 전 주지사, 에사 허친슨 전 아칸소 주지사, 기업가 비벡 라마스와미, 강경 보수 성향의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 래리 엘더 등 6명으로 늘었다.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 크리스 수누누 뉴햄프셔 주지사, 글렌 영킨 버지니아 주지사 등 잠재적 후보까지 뛰어들면 공화당 경선에 10명 이상의 후보가 난립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데이터분석업체 파이브서티에잇이 이날 주요 여론조사를 종합해 분석한 공화당 후보 지지율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53.5%로 과반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디샌티스 주지사(20.8%), 펜스 전 부통령(5.5%), 헤일리 전 주지사(3.9%), 라마스와미(3.7%), 허친슨 전 주지사(1.0%) 순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디샌티스 주지사를 제외하면 모두 한 자릿수 지지율이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군소후보 난립이 양강 구도를 더욱 강화하고 지지율을 분산시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유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시사지 디애틀랜틱은 “트럼프를 제외한 공화당 후보들은 곤경에 처해있다. 공화당 경선은 시작도 전에 끝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웅빈 워싱턴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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