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감성 놀이에 허비할 시간이 없다

국민일보

[여의도포럼] 감성 놀이에 허비할 시간이 없다

박희준(연세대 교수·산업공학과)

입력 2023-05-25 04:03

간호법 등 각종 사회적 이슈에
대해 보수와 진보 진영은 각자
논리로만 해석하고 상대 공격

언론사들도 팩트 중심보다는
자극적 제목·감성적 내용으로
진영 논리 강화 기사 쏟아내

개인이나 국가 명운은 정확한
정보 수집과 논리적 분석 및
체계적 전략 수립에 달려 있어

사건 본질 이해할 팩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 열어줘야
그만큼 포털의 역할이 중요해

사회의 화두로 떠오르는 각종 이슈에 대해 국민은 끊임없이 뜨거운 정치적 논쟁을 이어간다. 하지만 이슈의 내용과 논점에 대해 국민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회 상임위원회와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관련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팩트에 기반해 간호법의 내용과 논점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글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의사 집단과 기득권을 깨려는 간호사 집단 간의 대결 구도 속에서 간호법의 극단적인 파급 효과에 초점을 맞춘 기사, 야당의 입법 독주와 대통령의 독단을 지적하는 기사가 대부분이다.

간호법으로 검색한 기사를 몇 개나 읽어도 간호법의 본질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사회적 이슈를 심층 분석하는 TV 토론 프로그램을 봐도 마찬가지다.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을 대변하는 패널들이 참여해 양 진영의 논리로 간호법을 해석하고 감정적으로 상대 진영의 논리를 공격할 뿐이다. 이슈의 본질을 체계적으로 설명해주는 패널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대부분의 패널이 ‘전문가’를 직업으로 하는 전문가인 듯하다. 그렇다 보니 적지 않은 이들이 언론과 방송을 통해 전달되는 뉴스를 멀리하고 살아간다.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팩트를 중심으로 사건을 파헤쳐 기사를 생산해야 하지만 적지 않은 언론사들은 자극적인 제목과 감성적인 내용으로 진영의 논리를 강화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리고 각 기사에 달린 댓글에서도 논리적인 주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기사의 내용에는 관심도 두지 않고 선정적인 제목만 보고 자기 진영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와 상대 진영에 대한 악의적 비판을 쏟아내는 독자들이 적지 않다. 댓글 창은 감정의 배설구가 된 지 오래다. 진영의 논리를 떠나 팩트를 알고자 하는 이들은 답답할 뿐이다.

논리적 접근보다 감성적 접근에 기반을 둔 뉴스의 공급 행태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그 동인을 찾을 수 있다. 화두가 됐던 법안 대부분의 명칭만 봐도 그렇다. 태완이법, 조두순법, 민식이법, 김용균법 등과 같이 가해자나 피해자의 이름을 붙여 법안의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다. 법안을 발의하는 정치인들은 법의 제정을 위해 어렵게 느껴지는 법안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면서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기보다는 감성적인 틀로 법안을 포장해 법 제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반사회적으로 몰아가는 것이 훨씬 효과적임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선과 악의 이분법적 프레임이 만들어지면 법안의 위헌 소지나 부작용 등에 대한 적절한 논의는 쉽지 않다.

팩트가 배제되고 감정의 쏠림 현상에 의해 진행되는 의사결정의 폐해는 고스란히 우리의 몫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성적 접근을 통해 뉴스를 생산하고 소비하며 법의 제정을 위한 여론을 형성한다. 급속한 환경 변화 속에서 개인의 삶, 더 나아가 국가의 명운은 정확한 정보를 빠르게 수집해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미래를 위한 체계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데 달려 있다. 감성 놀이에 시간을 허비할 수 없는 이유다.

감성적인 접근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류에 적지 않은 전문가와 언론인, 정치인들이 편승하고 있지만 누군가는 팩트를 찾아서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팩트를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그들이 찾아낸 팩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포털을 통해 검색된 수많은 기사를 읽고도 사건의 본질조차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방치해서는 곤란하다.

대부분 포털 검색을 통해 뉴스를 접한다. 포털 사이트 운영자는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 기업이지만 뉴스 생산자와 소비자의 접점을 점하고 있는 만큼 보다 적극적인 그들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각 기사가 각 진영의 논리를 얼마나 대변하는지를 표기한 태그를 기사에 달아 독자들이 기사를 선별해서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으면 한다. 단, 대부분의 언론과 국민의 절반 이상이 스스로의 이념적 성향을 중도라고 인식하는 현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접근일 수 있다. 모두가 자신의 이념적 성향을 제대로 인식하고 솔직히 표현할 때 그리고 팩트에 기반을 둔 건설적인 토론을 위해 상대 진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할 때 가능한 접근이다.

박희준(연세대 교수·산업공학과)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