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윗동네에도 사람이 있다

국민일보

[빛과 소금] 윗동네에도 사람이 있다

신상목 미션탐사부장

입력 2023-05-27 04:02

지난 6일 북한 주민들이 어선을 타고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귀순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북한의 통제에 염증을 느껴 탈북한 것으로 국가정보원 조사 결과 밝혀졌다. 귀순자들은 평소 한국 방송을 시청하면서 우리 사회를 동경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귀순한 주민들은 두 가족으로 어린이를 포함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에서 가족 단위로 어선을 타고 귀순한 사례는 2017년 7월 이후 6년 만이라고 한다.

귀순 가족들은 합동신문 과정에서 “남조선에선 정말 일을 한 만큼 돈을 벌 수 있느냐” “이곳에선 진짜 자유롭게 살 수 있느냐” 등 한국 사회 실태에 대해 많이 질문했다고 한다. 과거에도 비슷한 귀순 사건이 있었지만 신문 내용이 상세히 알려지진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시선을 끌었다. 한국 사회를 향한 그들의 적극적인 궁금증 표현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정서가 현재 북한 주민 사이에 확산돼 있는지도 모르겠다.

통일부가 펴낸 ‘2022 북한 이해’에 따르면 북한 사회는 1990년대 심각한 경제난 이후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보완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시장이다. 통일연구원은 2016년 12월까지 북한에서 공식 시장 404개가 운영 중이라고 파악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는 2018년 2월 기준 공식 시장 482개를 위성사진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북한 주민이라면 누구나 종합시장에서 장사할 수 있고 농민시장에서는 양곡, 공업 제품 등도 일부 합법적 거래가 가능하다고 한다. 일명 ‘돈주’는 북한에서 개인적으로 화폐를 축적한 신흥 부자를 가리킨다. 돈주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새 계급이 출현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개인주의도 성장해 다양한 부업으로 생산한 물품을 시장이나 암시장에서 판매한다. ‘고난의 행군’을 통과한 청년 세대는 스마트폰 등 다양한 디지털기기를 활용해 정보를 교환하고 개인적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한국 정부는 북한 핵 문제만 대응할 게 아니라 북한 주민에게도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북한 주민 대부분은 조선노동당 간부 등 특수층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북한 체제 속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적대적으로만 볼 수 없다. 더구나 윤석열정부는 북한 인권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북한 주민과 한국 내 탈북자에 대한 인식을 달리할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도 최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탈북민들이 우리 체제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만큼 앞으로 한국 내 탈북자나 북한 주민에 대한 인식이 확실하게 달라지기를 소망한다.

북한에는 이런 주민만 있는 게 아니다. 기독교인도 있다. 윤현기 아신대 북한연구원 교수는 최근 열린 북한 선교 포럼에서 북한의 그루터기 신자를 주제로 발표했다. 그루터기 신자란 분단 이전 북한에 살았던 37만명의 기독교인이 공산정권의 탄압으로 소멸한 이후 남아 있는 신앙인들을 말한다. 대략 7만명가량으로 추산된다.

이들 이외에도 북한에는 지하교회 신자, 그리고 공인교회 신자들이 있다. 지하교회 신자는 ‘2023 북한인권보고서’에서 그 실체가 분명하게 확인됐고, 미국 국무부나 국제오픈도어선교회 등에서도 그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최근 출간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슴다’의 저자는 그루터기 신자이자 지하교회 교인이었던 모친에 대해 생생히 증언한다. 이렇게 북한에 기독교인이 엄연히 존재하는 만큼 한국 정부는 북한을 외면하거나 적대시하면서 대결 양상으로 몰아갈 수는 없다.

게다가 북한엔 억류자들도 있다. 23년 전 억류돼 아직도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김동식 선교사를 비롯해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김원호 함진우 고현철 장만석 선교사 등이다. 이들이 억류돼 있는 한 북한을 외면할 수 없다. 윗동네에도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도 주님의 은총이 임하기를 기도한다. 평화와 통일을 향한 간절한 기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신상목 미션탐사부장 smshin@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