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앨버타의 ‘황금알 거위’

국민일보

[데스크시각] 앨버타의 ‘황금알 거위’

권기석 국제부장

입력 2023-05-25 04:02

캐나다 앨버타주는 지금 심각한 재난을 겪고 있다. 겨울 스포츠로 유명한 도시 캘거리가 있는 이곳은 곳곳에서 발생한 산불 연기로 대기 질이 최악 수준이다. 외신 보도에 나온 숫자를 보면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 알 수 있다. 지금까지 2만9000여명이 집을 떠나 대피했고 화재로 소실된 면적은 서울의 13배가 넘는 8420㎢라고 한다. 앨버타주 1600명과 캐나다·미국 다른 지역 1000명까지 소방관 2600명이 진압에 투입됐다. 폐 질환을 호소하는 주민이 늘고 있다. 불이 번지는 속도가 언제 늦춰질지 전문가들도 예측을 못 한다.

매년 봄 산불이 발생했지만 이렇게까지 심각하지는 않았다. 지난해는 소실 면적이 4.59㎢에 불과했다. 올해 최악의 상황이 된 건 기후 조건 탓이다. 2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강우량은 평년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평균기온은 3~6도 더 높았는데 특히 5월에는 기록적인 폭염이 찾아와 1~15일 사이 최고기온 기록이 158차례나 깨졌다고 한다. 나뭇가지와 나뭇잎이 바짝 말라 더 잘 탈 수 있게 된 것이다. 앨버타주 산불은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재난의 한가운데서 앨버타주는 오는 29일 주 총리를 뽑는 선거를 실시한다. 이를 취재하는 뉴욕타임스 기자의 최근 칼럼성 기사 ‘앨버타는 불에 타는데, 기후변화는 선거서 금기’가 눈길을 끈다. 이 기자는 엄청난 산불로 인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탄소 배출 감축이 선거의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기대한 모양이다. 그렇지만 주 총리 후보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최근 토론에서 현 주 총리는 ‘탄소세’를 기업에 부과한 상대 후보이자 전직 주 총리를 반복해 비난했다. 탄소 배출을 제한하는 시도는 원유 생산을 감축시켜 앨버타주의 수입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상황이 의아했던 기자는 앨버타대 정치학 교수에게 배경을 물었다.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원유와 가스는 앨버타주가 오랫동안 누려온 눈부신 번영의 원천입니다.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아 이곳에서 원유와 가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 교수의 말처럼 원유와 가스는 앨버타주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에너지산업 덕분에 앨버타주는 고임금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많다. 주 재정이 넉넉해 판매세는 캐나다에서 가장 낮다. 올해도 주 수입의 36%가 원유와 가스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곳에서 기후위기 대처를 위해 에너지 생산을 제한하자는 주장은 부와 일자리의 상실을 의미한다. 기후위기가 낳은 재난으로 숨쉬기 어려운 고통을 겪으면서도 이를 막는 노력은 선거 의제에 오르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앨버타주 상황은 전 세계에서 기후위기 대처가 왜 어려운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재난 수준의 폭염과 가뭄, 홍수가 발생하고 있지만 경제적 이익과 번영 앞에 어떤 국가, 정부도 과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데 이는 에너지 공급 비용을 높여 현재의 경제적 이익을 해치게 된다. 전 사회가 함께 손해를 감당해야 하므로 다음 선거에서 표심을 의식하는 정치인들은 전향적 실천을 제안하지 못하고 있다. 누구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기후위기 대처는 지금보다 못살아야 한다는 현실을 모두가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한다. 지금까지 누려온 번영과 편리함을 어느 정도는 포기해야 지구를 오염시키는 물질을 줄일 수 있다. 소득이 줄고 세금을 더 내는 일을 견디지 못하면 기후위기가 낳는 재앙은 현실이 될 수밖에 없다.

권기석 국제부장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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