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나사의 정치적 독립

국민일보

[한마당] 나사의 정치적 독립

고승욱 논설위원

입력 2023-05-27 04:10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홈페이지에 스스로를 항공·우주와 관련된 과학과 기술을 담당하는 정부기관이라고 소개한다. 그런데 단순한 정부기관이 아니라 독립된 연방행정기관이다. 중앙정보국(CIA), 연방준비제도(Fed)처럼 정치적 독립을 제도적으로 보장받는다. 대통령이 상원의 동의를 받아 임명한 국장이 연 232억7100만 달러(약 30조8600억원)의 예산을 집행하고, 직원 1700여명의 인사권을 전적으로 행사한다. 모든 사안을 연방정부 어느 곳도 거치지 않고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같은 대규모 사업은 대통령이 의회를 찾아가 국민에게 직접 설명한다.

나사의 독립성은 출범 때를 생각하면 당연하다. 1958년 구 소련의 스푸트니크호 발사에 선수를 뺏긴 미국은 해군이 개발한 뱅가드호를 쏘아올렸지만 폭발 장면을 생중계하는 수모를 겪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미국의 모든 힘을 한데 모아 치욕을 갚겠다고 결정했고, 나사로 이어졌다. 민간은 물론 육·해·공군의 핵심 역량이 집결된 슈퍼조직이 등장한 것이다. 3년 뒤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에 성공하자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유명한 ‘달 선언’을 하고 돈을 무제한급으로 투입했다. 나사의 예산은 한때 미국 GDP의 0.75%, 연방정부 예산의 4%에 달했다. 이런 조직을 만들면서 정치적 독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인도 달탐사 로켓 발사 시간이 대선에 맞춰 뒤바뀌는 끔찍한 상황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을 것이다.

누리호가 성공하자 ‘한국의 나사’ 우주항공청 설립을 놓고 정치권에서 이런저런 논란이 불거진다. 정부가 특별법을 입법예고했는데 위상을 강화한 다른 조직을 만들자는 주장이 나와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우주항공청 설립을 내년 총선에 이용해보려는 뻔한 목소리까지 들린다. 정치가 과학의 발목을 잡는 일은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 터무니없이 적은 예산을 사명감으로 극복하고 누리호를 성공시킨 과학자들에게 부끄럽지는 말아야 한다.

고승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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