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 철 지난 숙제, 한국의 대중정책

국민일보

[한반도포커스] 철 지난 숙제, 한국의 대중정책

박원곤(이화여대 교수·북한학과)

입력 2023-05-29 04:02

최근 미·중 관계와 관련된 논란이 재점화되는 양상이다. 이달 일본 히로시마에 모인 주요 7개국 정상은 “중국과 탈동조화(decoupling)가 아닌 위험 축소(derisking)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중국과 경제 분야에서 정면충돌하기보다는 위험을 관리하는 건설적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안보 분야는 이전과 유사하게 중국이 인도·태평양 지역 내에서 ‘힘에 의한 현상변경’을 추구하는 것에 결연히 반대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그러나 중국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인정하고, 중국과의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관계 구축을 밝힘으로써 미국과 서구의 대중정책이 변화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최근 일련의 흐름도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된다. 예를 들어 지난 10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이 오스트리아에서 만나 미·중은 “열린 소통채널을 유지하고 경쟁을 책임 있게 관리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특히 중국 신화통신은 “양측이 중·미 관계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관계의 하강을 중단시키고 안정화하기 위해 솔직하고 심층적이며 실질적이고 건설적인 논의를 했다”고 적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대중정책을 전환한 것은 아니다. 작년 5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정책을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중국에 대해 국제질서의 가장 심각한 장기적 도전으로 규정했지만, ‘충돌’이나 ‘신냉전’ ‘봉쇄’ 등을 추구하지 않음을 분명히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경쟁력을 위해 ‘투자’하고 동맹국과 ‘연계’해 중국과 ‘경쟁’한다는 세 가지 핵심 원칙을 제시했다. 정리하면 미국은 중국이 국제법과 원칙을 훼손할 수 있는 전략적 환경을 동맹국과 함께 재편해 중국을 견제한다. 동시에 중국과의 대화를 통해 모든 영역에서 건설적으로 관여한다는 것이다. 이후 “안전대(가드레일)를 친 전략적 경쟁”이란 표현으로 대중정책을 끌어갔다.

한국 내 일부에선 최근 흐름의 일정 부분만을 가지고 윤석열정부의 대중정책에 문제를 제기한다. 미·중 협력 가능성이 부각되고, 작년 미·중 무역규모가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프랑스 독일 정상이 중국을 방문하는 양상 등을 근거로 한국 정부가 선택한 ‘전략적 명확성’을 비판한다. 미국조차도 중국과 관계 개선에 나서는데 한국만 중국을 견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정책은 견제와 관여의 이중구조로 돼 있고, 한국 정부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견제 측면에서 윤석열정부는 ‘상호 존중과 호혜’를 원칙으로 삼고 전략 목표를 미국 및 서구 등과 함께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로 맞춰나가고 있다. 지난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힘에 의한 현상변경 반대 등 지극히 원론적인 국제규범을 이야기했다. 중국이 반발해도 규범에 기초한 질서는 국제사회와 함께 지켜나가는 것이 한국의 정체성에 부합한다. 그렇다고 윤석열정부가 중국에 대한 관여를 배제한 것은 아니다. 공식 문건인 ‘자유·평화·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협력 원칙 중 첫째로 ‘포용’을 선택하고 사실상 중국을 의미하는 “특정 국가를 겨냥하거나 배제하지 않음”을 분명히했다.

지난 1년간 한국 정부는 미뤘던 숙제를 하고 있다. 철 지난 ‘전략적 모호성’을 버리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공유하는 대중정책과 병합하는 나름의 원칙을 제시했다. 이제는 이를 구체화하는 작업이 남아 있다. 일관성을 유지하고, 대만해협과 같은 중국의 사활적 이해를 정교히 고려하며, 다양한 층위에서 전략 대화를 본격화하면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가 가능할 것이다.

박원곤(이화여대 교수·북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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