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동네 숲의 가치

국민일보

[돋을새김] 동네 숲의 가치

김찬희 산업1부장

입력 2023-05-30 04:02

아파트 단지 맞은편에 동네 숲이 있다. 베란다에서 창 너머로 산들거리는 초록색 나무들과 파란 하늘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포근해질 정도는 된다. 터를 잡을 때만 해도 가녀렸던 나뭇가지들은 세월의 옷을 입으면서 굵은 몸집으로 자랐다. 키 작던 메타세쿼이아들은 하늘로 높게 뻗었다. 웅장한 ‘근육’의 메타세쿼이아 사이로 난 흙길을 끝까지 걸으면 15분 남짓 걸린다. 옆으로 딸린 공원, 산책로 끝에서 이어지는 한강습지공원까지 포함하면 상당한 규모의 녹지 공간이다.

아파트 단지 옆으로 10분쯤 걸으면 서울식물원이 나온다. 날씨 좋은 날에는 늦은 저녁에도 무리를 지어 달리기하는 사람, 가족과 산책을 나온 사람,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로 붐빈다.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는 꽃과 나무는 ‘변두리라도, 근사한 동네에 사는구나’하는 뜬금없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사실 처음부터 그럴싸했던 동네는 아니다. 직장까지 멀지도 가깝지도 않으면서 집값이 싸다는 이유로 뿌리를 내렸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주택가 근처에 논이 있고 한여름 밤에는 개구리가 운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었다.

갑자기 동네 숲의 가치가 궁금해진 건, 둘째 아이 때문이다. 얼마 전에 큰마음 먹고 창호를 교체하기로 결정하면서, 아이 방과 연결된 베란다 사이의 유리를 불투명으로 바꾸려고 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돌아온 답이 엉뚱했다. “침대에 누워서 창문 밖 나무들과 하늘을 보는 게 좋아요.” “왜 좋으니.” “그냥 바라보고 있으면 평화롭고 따뜻해져요.”

과거에는 찾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동네마다 숲 혹은 공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숲이라 부르기 민망한 공간도 있고, 제법 울창한 곳도 있다. 동네 숲은 어떤 가치를 지니며, 가치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소셜벤처 트리플래닛과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4개 도시 숲(서울로 7017, 청계천, 어린이대공원, 수도권매립지)이 미세먼지나 이산화탄소 흡수, 공기 정화, 사막화 방지 등으로 연간 46억7000만원에 이르는 경제적 가치를 준다고 한다. 눈길이 가는 지점은 ‘이산화탄소 흡수’다. 기후재난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힘을 키우고 있어 ‘탄소중립’은 선택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 탄소중립은 배출한 만큼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실질적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이다. 핵심은 ‘흡수’와 ‘저장’이다. 주요국에선 탄소흡수·저장 기술 개발과 밸류체인 구축에 뛰어들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탄소 배출이 많은 품목에 세금을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의 시범 도입에 돌입했다. 기업은 물론 국가경제 차원에서 탄소 흡수·저장은 존망의 문제로 떠올랐다.

숲의 가치는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숲은 거대한 탄소 흡수·저장 시설인 동시에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안겨주는 자원이다. 우리는 대대적인 산림 조성에 성공한 경험이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황폐화한 산림은 1973년 시작한 국토녹화 사업으로 반전을 이뤘다. 한국의 산림 면적은 2020년 기준으로 629만8000헥타르(㏊)이고, 탄소흡수량은 4560만tCO2(이산화탄소톤)이다. 산림청에서 계산했더니, 한국 숲의 공익가치는 연간 259조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탄소 흡수·저장에 따른 가치가 97조6000억원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숲을, 특히 동네 숲(도시 숲)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다. 개발 대상 혹은 장식용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공들여 만든 도시 숲을 밀고 그 자리에 공연시설을 짓겠다는 발상을 할 정도다. 한국의 1인당 생활권 도시 숲 면적은 11.48㎡(약 3.5평)로 세계보건기구(WHO)의 권장기준 15.0㎡(약 4.5평)에 못 미친다.

김찬희 산업1부장 chkim@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