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누리호 성공… 우주항공청 역할 막중해져

국민일보

[시론] 누리호 성공… 우주항공청 역할 막중해져

허희영 한국항공대 총장

입력 2023-05-30 04:05

누리호에서 자동차 강국 대한민국의 태동이 떠올려진다. 1974년 정주영 회장은 미쓰비시 엔진을 장착한 ‘포니’를 이탈리아 모터쇼에 선보였다. 20년 넘는 정비소 경험으로 67년 회사를 창업해 내놓은 첫 작품치곤 괜찮았다. 이듬해 시판에 들어갔고 76년 처음으로 수출됐다. 당시 아우토반에선 시속 200㎞ 넘는 스포츠카가 달리고 있었으니 후발주자의 도전은 무모해 보였다. 그러나 79년 오일쇼크 위기를 넘긴 현대차는 85년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그해 세계 각국에 다양한 모델을 수출하면서 브랜드를 구축해 나갔다. 98년 외환위기에선 구조조정을 통해 체력을 강화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685만대를 팔아 도요타, 폭스바겐에 이어 3위에 올랐다. 2010년 포드를 제치고 5위에 오른 지 12년 만이다. 올해 1분기엔 영업이익 6조4667억원으로 세계 2위의 실적을 냈다. 2026년엔 세계 1위 도요타마저 꺾을 거란 관측까지 나온다.

후발주자의 극적인 따라잡기가 항공우주에서도 가능할까. 예상은 기대 반 우려 반. 이번 누리호 3차 발사로 우리나라는 1t 이상급의 실용위성 발사에 성공한 일곱 번째 국가가 됐다. 모사체가 아닌 실용위성을 국제우주정거장 밖의 550㎞ 궤도까지 올렸다. 우주발사체의 기술이전을 금하는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에서 미국의 수출규제를 극복하고 30여 국내기업이 공동으로 국산화 94%를 달성한 건 이번 성공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이다. 8기의 위성을 단계적으로 궤도에 투입해 군집위성 시대의 준비단계가 지나면 국내 공공위성의 발사수요가 2030년까지 130여기 예정되어 있다. 반복 발사로 실력을 증강할 발판인 셈이다.

여기에다 세계적으로 급증하는 소형위성의 수요도 기대감을 더한다. 우주 인터넷을 놓고 아마존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스페이스X는 전 세계를 위성으로 덮는 스타링크를 위해 앞으로 4만여 기를 올릴 계획이다. 발사가 위성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불균형에선 우리에게 기회가 올 거란 얘기다. 200t급의 누리호가 위성 운반 목적의 발사체로 중량과 추력에서 스페이스X의 팰컨 9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의 대표인 소유스가 중량 308t임을 고려하면 첫 작품치곤 괜찮다. 발사체가 앞으로 주 위성 외에도 남는 공간을 이용하여 대학과 민간 스타트업의 큐브위성에 대한 무료 발사의 기회를 제공하게 되면 뉴스페이스 시대를 앞당기는 견인차가 될 것이다. 현대차 포니처럼 누리호의 도전은 이렇게 희망적이다. 2027년까지 더 진행될 세 차례의 발사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주도하면서 항우연과 국과연, 천문연에서 축적해 온 우주기술이 빠르게 민간부문으로 파급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뉴스페이스 시대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기대만큼이나 한쪽엔 우려도 크다. 우주개발 초기의 정책 기조 그대로 연구개발 중심으로 책임을 적당히 나누는 현재의 우주항공 거버넌스는 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 뉴스페이스 시대에도 과연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우주와 항공, 연구개발과 산업육성이 서로 연계 없이 여러 부처에서 따로따로 추진되고 있으며, 소수의 순환보직 공무원으로 채워진 부처는 전문성과 정책의 일관성 부족이 늘 지적받는다. 항공우주의 거버넌스 재정립을 서둘러야 할 이 시기에 우주항공청의 설립에 대한 논쟁이 안타깝다. 소관 부처 간의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 항공우주 전반을 총괄하는 전담 중앙행정기관 신설에 대한 학계와 산업계의 목소리에 정치권은 귀 기울여야 한다. 우주개발은 다른 산업과 달리 통신, 안보, 기상, 환경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장기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국가전략산업이다.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이제 우주항공청의 역할이 더 막중해졌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총장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