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나는 기독교인입니다”

국민일보

[빛과 소금] “나는 기독교인입니다”

전병선 미션영상부장

입력 2023-06-03 04:07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27일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이 우리나라 독립과 건국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19세기 말 한국에 온 호러스 언더우드, 헨리 아펜젤러, 메리 스크랜턴, 로제타 홀 등을 거론했다. 언더우드는 경신학당과 연희전문학교를,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을 세웠다. 스크랜턴은 여성 교육의 효시 이화학당을 설립했고, 로제타 홀은 우리나라 첫 간호학교와 맹아학교를 세웠다. 우리나라 근대 교육은 선교사들, 기독교인들이 시작했다.

교육뿐만 아니라 의료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선교사 호러스 알렌이 서양식 병원 광혜원을 개원했다. 로제타 홀은 인천부인병원을, 아들 셔우드 홀은 결핵전문요양원과 병원을 세우고 결핵 퇴치 기금인 크리스마스실을 제작했다. 스포츠 분야에서도 축구는 윌리엄 전킨 선교사가, 야구는 필립 질레트 선교사가 소개했다. 요즘 골프 열기가 뜨거운데 윌리엄 레이놀즈 선교사가 한국에 9홀 골프장을 만들었다.

이들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들은 기독교인들이 우리나라 독립과 건국에 앞장섰다.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 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 기독교 대표였던 이승훈은 3·1운동을 성사시키기 위해 19일간 서울과 평양, 선천을 오르내리며 회합을 하고 민족 대표들을 규합했다. 3·1운동에 앞선 2·8 독립선언은 일본 도쿄의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이뤄졌다. 만세운동 확산에 기독교의 역할과 기여는 상당했다. 실제 만세운동에 참여한 이들 중 기독교인은 22%로 가장 많았다. 천도교 15%보다 크게 앞선 수치였다.

임시정부 수립도 기독교인이 주도했다. 박명수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에 따르면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은 상하이한인교회와 신한청년당이 이끌었는데 신한청년당 당원 모두가 기독교인이었다. 임시정부 주요직인 이승만 국무총리, 안창호 내무총장, 김규식 외무총장이 기독교인이었다. 이승만은 기독교인을 배경으로 독립촉성중앙회를 만들었다. 김규식은 언더우드 선교사가 설립한 고아원 겸 학교에서 자랐고 기독교청년회를 배경으로 활동했다. 임시정부 헌장 7조에는 “대한민국은 신의 뜻에 의해서 세워진 나라”라고 돼 있다.

1948년 5월 31일. 역사적인 순간이었던 대한민국 제헌국회 제1차 회의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로 시작했다. 임시 의장 이승만 박사가 제안했고 모든 의원이 일동 기립한 상태에서 목사 이윤영 의원이 기도했다. 한국전쟁 때는 많은 기독교인이 공산주의에 대항하다 순교했다. 한국 사회의 발전도 기독교가 중심이 돼 이뤄졌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곳곳에서 기독교인이, 기독교 문화가, 기독교 교육이 이 사회의 수준을 높였다. 비관주의의 한국 사회를 긍정과 희망, 낙관하는 사회로 만든 것도 교회, 기독교였다.

기독교인이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이다. 이런 기독교의 영향과 기독교인들의 헌신으로 지금 대한민국은 안전하고 자유와 수준 높은 삶을 누리고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이에 대한 자부심을 느껴도 좋다. 요즘 기독교가 욕을 먹는다는 둥, 한국교회의 호감도가 낮다는 둥, 이런 것으로 자기 신앙을 드러내지 못하는 기독교인이 있다고 해서 하는 말이다. 특히 다음세대들은 이런 역사를 통해 우리의 기독교 선조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역사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더 중요하고 확실한 것이 있다. 기독교인으로서 자부심, 자긍심, 자신감, 자존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사실이다. 우리 기독교인의 아버지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내가 기독교인이라고 자랑하고도 남을 팩트다.

하나 더, 우리 기독교인은 생명 살리는 일을 한다. 쉽게 말해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구명정을 던지는 것과 같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전한다. 그들이 예수를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천국에 들어간다. 이보다 더 당당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전병선 미션영상부장 junbs@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