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작은 가게들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작은 가게들

김선오 시인

입력 2023-06-05 04:07

신도시에서 십년 가까이 살다 작년에 이사 온 서울 종로구는 오래된 동네인 만큼 오랜 시간 제자리를 지켜온 작은 상점들이 많다. 그중 내가 즐겨 찾는 가게 하나는 집 근처 손두부 집인데,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두부에서 어디서도 맛본 적 없는 부드러운 식감이 느껴진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두부 두 모를 사는 일이 요즘의 기쁨이다.

종종 가던 서울 번화가의 단골 가게 중 여럿은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문을 닫았다. 좋아하는 공간이 사라지는 일은 좋아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처럼 마음을 어렵게 한다. 경제적 이유로 공간의 문을 닫게 된 소상공인들의 마음은 손님의 아쉬움과는 비할 데 없이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오래된 동네엔 오래된 주민들이 많고 그들이 단골로 오가는 가게들이 보다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을 테지만, 이 동네 역시 요즘 문을 닫는다는 공고문들이 종종 눈에 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문한 커튼을 수선해야 해서 동네의 작은 세탁소를 찾았다. 처음 들르는 곳이었는데 가게 앞에는 ‘다음 달에 폐업합니다’라고 적힌 안내문이 있었다. 대충 봐도 동네에서 이십년 이상은 운영됐던 곳 같았다. 조금 씁쓸한 마음으로 커튼을 맡기고 다음 날 아침에 찾으러 갔더니 사장님은 수선이 조금 잘못됐다고 수선비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살펴보니 커튼을 달고 나면 보이지도 않을 부분에 조금 생채기가 나 있었고 그 외에는 모두 깔끔하게 수선이 돼 있었다. 조금이라도 받아달라고 했지만 사장님은 “어른은 자기가 실수한 일에 책임을 지는 거야”라는 말씀과 함께 거의 내쫓듯 나를 내보냈다. 그날 오후 세탁소에 딸기 한 팩을 두고 오는 동안 ‘어른’과 ‘책임’이란 말이 오래도록 귀에 맴돌았다.

작은 골목에서 작은 규모로 운영되는 가게들이 지켜왔던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들의 사라짐과 함께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들 역시 떠올려본다. 이 어려운 마음이 어떤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선오 시인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