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도약의 원천, 자부심

국민일보

[경제시평] 도약의 원천, 자부심

김일중 (성균관대 교수·경제학과)

입력 2023-06-06 04:02

현충일에 열사들의 넋을 거듭 기린다. 그 고귀한 희생 위에서 2005년 국내총생산 세계 10위와 2018년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의 기적을 이뤘다. 뿌듯함은 작년에도 이어져 월드컵 16강 진출의 순간에 감격했다. K드라마, K팝, 웹툰의 약진이 계속됐다. 학습 플랫폼 듀오링고에서 한글이 중국어도 넘어서며 글로벌 7위를 했다. 봉화 갱도의 기적을 만든 헌신과 물난리 중 의인들의 미담에 뭉클했다. 그 전 아프가니스탄의 미라클 작전과 올해 튀르키예 급파 구조대, 수단에서의 프라미스 작전, 누리호 3차 발사도 벅찼다.

자부심은 자신과 주변의 가치를 당당히 여기는 마음이다. 다소 복잡한 단계의 자의식이자 으뜸의 미덕이라고도 불린다. 영어론 프라이드(pride).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의 오만도 프라이드다. 둘의 차이? 함께 지내보면 안다고 현인은 답했다. 같이 있고 싶으면 자부심이다. 품격을 풍기면서도 주변을 누르지 않아서다. 각별히 ‘최고에 거는 자부심’ ‘자부심이 돋운 주인의식’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같은 표현들을 듣는다. 자부심과 생산성의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심리학자들은 자부심이 인내를 키운다는 실험 결과들에 주목했다(데이비드 데스티노). 동시에 소위 마시멜로 테스트처럼 인내가 성과를 높인다는 결과들에 근거해 자부심이 생산성을 높인다고 주장했다. 한편으론 성과의 주요인을 열정·인내 같은 그릿(grit)으로 개념화했다. 이후 자부심이 그릿을 키웠다는 결과를 토대로 생산성 제고 주장으로 이어진다(앤젤라 더크워스). 스파르타 300인의 테르모필레 항전이 내로라할 예다. 한국에서의 초기 반도체 생산 분위기도 외신은 그릿이라 묘사했다. 조직행동론의 논문들도 유사 결과를 검증했다.

그래서 자부심은 참 귀하다. 자부심 쌓기는 본인과 공동체들의 능력과 소중함을 믿게 하는 것이다. 근데 비용이 든다. 당장 먹고살기에 피폐해지면 자아가 위축된다. 취약층을 국가가 더 열심히 돌봐야 하는 이유다. 직장에 대한 자부심을 키워 주려면 기업도 투자가 필요하다. 병영 식단, 학교 도서관, 지하철역 화장실에도 재원이 필요하다. 공화적 합의를 이끄는 민주사회도 소통의 비싼 과정을 겪어야만 가능하다. 이 자부심 쌓기에 우리는 한껏 충실했는지 숙고할 때다. 특히 나라 자부심과 관련해 요즘 일부 정황이 우려스럽다.

세계가치관조사(WVS)의 “시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는가?”에 한국인의 긍정 답변율이 2010∼2014년(60개국) 조사 때 41위에서 2017∼2022년(90개국)에는 77위였다. 공통 48개국만 추리니 29위에서 41위로 내려갔다. 2022년 갤럽의 “요건이 충족되면 타국에서 살고 싶나?”에 34%나 동의했다. 하지만 세계 1만8000명에게 ‘가장 강한 나라’를 묻는 미국 유력 신문의 조사에서 한국은 85개국 중 6위였다. 그런데도 자국민 셋 중 하나는 이주를 원한다. 지난주 드러난 경보체계 부실로 더 늘어나지 싶어 딱하다.

자부심 배양 거버넌스를 구축하자. 구성원별 자부심을 평가하고, 주요 결정 요인을 파악하고, 선한 성과 펼치기를 조직마다 더 고민하자. 수치심 유발 요소를 줄이는 장치도. 돌이켜 보면 가령 K자부심은 격세지감이다. 1980년대 첫 외국살이에서 만난 현지인 대부분은 한국을 아예 몰랐다. 이후 10년 간격 두 번의 해외 체류는 달랐다. 친숙, 부러움 같은 표현을 썼다. 그리고 최근 10년, 업신여겼던 김치는 물론 호텔 앞에서 산뜻한 지하철 타고 가 북한산 등반을 했던 서울을 그들은 예찬한다. 천우신조로 얻은 이 프라이드, 품격 높은 선도국가로의 도약에 필수다. 진실과 전문성으로 오롯이 키우자.

김일중 (성균관대 교수·경제학과)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