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100살 넘긴 헨리 키신저

국민일보

[한마당] 100살 넘긴 헨리 키신저

전석운 논설위원

입력 2023-06-06 04:10

헨리 키신저는 1960~70년대에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지낸 미 외교의 거물이자 살아있는 전설이다. 열흘 전인 지난달 27일 100세 생일을 맞았지만 여전히 강연과 언론 인터뷰, 집필 활동 등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그는 최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미·중 갈등이 악화되면 5~10년 안에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하는가 하면 다보스포럼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 종전 해법을 제안하는 등 현실 국제정치에 대한 전망과 조언을 열정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양보하라는 제안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크게 반발하는 등 키신저 방식이 늘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키신저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7년 미·중이 북핵 해법으로 북한 김정은 정권 교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논의할 수 있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 국가안보보좌관 시절인 1969년에는 동해 상공에서 미군 정찰기가 격추되자 북한에 대한 폭격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아 실제 군사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키신저는 자신의 주장을 끝내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베트남 전쟁 종전 협상의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 사건을 중재한 전력으로 ‘평화의 전도사’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칠레 등 남미 군사정권들의 양민 학살을 묵인하는 등 철저히 미국의 국익을 중시했다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반대했다가 이를 철회하는 등 ‘외교 천재’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주요 현안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엇갈린 평가에도 ‘역대 최고의 미 국무장관’으로 뽑힌 그가 99세 나이에 ‘리더십’이라는 두툼한 서적을 낸 데 이어 100세를 넘긴 나이에 또 다른 저서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나이를 잊은 그의 건강과 열정이 경이롭다. 다만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그의 조언은 가려 들을 필요가 있겠다.

전석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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