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경의 오아시스] 만시지탄의 연금개혁은 말아야

국민일보

[안철경의 오아시스] 만시지탄의 연금개혁은 말아야

입력 2023-06-07 04:02

출생아 수 38만명 감소, 노인 기대여명 7년 증가, 경제성장률 10% 포인트 감소! 이는 국민연금 도입 후 35년 동안 변화한 우리나라의 저출산·고령화·저성장 모습이다. 압축 성장 국가의 인구경제 구조 변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늦게 출발했다. 고령화 수준이 낮고 경제 성장이 한창이던 1988년 도입됐다. 당시 국민연금을 둘러싼 환경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고, 압축 성장을 성공한 자신감으로 저부담·고급여의 후한 국민연금제도를 택했다.

그때는 맞았고, 지금은 틀린 것일까? 30여년 만에 이렇게 세상이 변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이젠 애물단지처럼 전락한 국민연금에 화타의 처방을 애타게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연금개혁 논의가 재점화됐다. 그러나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와 민간자문위원회의 연금개혁 논의는 소득 보장과 재정 안정화라는 상충적 현실 앞에서 좌초 일보 직전이다. 5년 전 연금개혁 논의 때처럼 흐지부지될까 우려스럽다.

국민연금은 지난 35년 동안 보험료율 3%에서 9%로, 소득대체율 70%에서 40%로 조정됐지만 여전히 수지 불균형 상태다.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 배율로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3배이나 우리나라는 3.5배로 심각한 수지 적자다. 이로 인해 지난 15년 동안 국민연금 기금 소진 시점은 2060년에서 2055년으로 5년이나 앞당겨졌다. 연금 재정에 적색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다.

돌이켜 보면 이미 우리는 기초(노령)연금 도입 후 15년 만에 그 급여 수준은 10만원 수준에서 30만원으로 급격히 증가해 왔다. 공적연금의 재정 위기를 언급하는 과정에서도 기초연금은 40만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정돼 있다. 물론 여전히 부족한 노후보장 수준이지만 국가의 재정적 여력을 고려하면 상당히 고무적이다. 어찌보면 이젠 기초연금의 재정 문제까지 염려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앞으로 추가적 노후 준비는 재정 문제가 유발되지 않는 방법으로 모색해야 한다.

이에 선진국의 사적연금 활성화를 통한 노후소득보장 강화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퇴직·개인연금과 주택·농지연금 등 사적 자산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물론 노후자산이 없는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보조금 등을 통해 노후자산을 축적할 유인을 제공할 필요는 있다.

이를 위해 노후 준비 목표 수준의 설정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으로 30~40%를, 퇴직·개인연금 등 사적 자산으로 20~30%를 충당해 평균 소득자의 목표 소득대체율을 60~70%로 맞추는 것을 제안한다. 물론 소득계층별, 가입자 특성별로 접근 전략을 다르게 해야 한다. 이에 전체적 목표 수준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 세부적 접근은 원만히 수행될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프랑스의 연금개혁 과정을 보면서 지도자 결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 연금제도의 특성상 다양한 이해가 얽혀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사 큰 불협화음 없이 개혁했다고 하더라도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연금제도는 탄력적으로 개선돼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한 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는 경우라면 급한 불부터 끄고 가자. 좌고우면의 장고로 일을 그르치지 말고 큰 틀에서의 결단이 요구된다.

2007년 연금개혁 후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이것저것 재다가 놓쳐선 안 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상황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15년 만에 다시 연금개혁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열기도 뜨겁다. 이제 화타와 같은 명의가 돼 완벽한 치유를 못할지언정 작은 이해에 집착해 연금개혁이라는 큰 목표를 잃게 되는 소탐대실의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안철경 보험연구원장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