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의 빛을 따라] 차마 말하지 못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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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의 빛을 따라] 차마 말하지 못한 것

입력 2023-06-0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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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들이 모인 곳에 갈 때마다 받는 질문이 있다. “한국교회에 희망이 있을까요?” 질문이라고는 하지만 목회자들의 가슴에 안개처럼 스며든 열패감이 그렇게 표현된 것일 뿐이다. 많은 신학교가 입학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하고, 팬데믹 기간 중 교회를 벗어난 이들은 엔데믹으로 전환된 상황에서도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개신교회에 대한 공신력이 놀라울 정도로 하락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100년 남짓한 기간 동안 놀라운 양적인 성장을 경험한 한국교회가 이제 쇠락 국면으로 접어든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사회의 변화를 선도하던 교회가 사회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정체된 현실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농어촌 지역 교회의 형편은 더욱 암담하다. 연로한 교인이 대부분이고 새롭게 유입되는 인구는 없다시피하니 교회는 날이 갈수록 비어간다. 10년 후에도 교회가 여전히 존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노령화, 인구절벽, 농촌해체라는 삼중고 속에서도 성실하게 사역을 감당하는 이들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실 앞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도무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이런 문제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을 가진 사람은 없다. 다만 함께 걱정하고 아파할 뿐이다.

희망은 있는가. 희망은 외부로부터 오기도 하지만 희망의 뿌리는 사실 우리 속에 있다. 어쩌면 희망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국교회에 희망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듣는 순간 가슴이 무지근해졌다. 얼핏 마음에 떠오르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었지만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때 그분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공감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여기에 적는다.

질문을 듣는 순간 장 지오노의 책 ‘나무를 심은 사람’이 떠올랐다. 작품의 화자는 한때 사람들이 살았지만 황무지로 변한 곳을 찾아간다. 며칠 동안 메마른 땅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던 그는 목이 말라 지칠 즈음 나무를 심고 있는 한 노인을 만난다.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노인은 저녁이면 작은 주머니에 담긴 도토리를 책상 위에 쏟아놓고는 썩은 것이 없는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펴보면서 좋은 것을 골라냈다. 날이 밝으면 양 떼를 데리고 광야에 나가 작은 부삽으로 땅을 파고는 거기에 도토리를 묻곤 했다. 누구의 소유인지도 모르는 그곳에서 노인은 양 몇 마리와 함께 살면서 황무해진 땅에 생명을 초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그에게 그 일을 부탁하지 않았고 그의 수고를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온 화자가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때 그는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나무를 보았고, 물줄기가 싱그럽게 흐르는 것을 보았다. 새들의 즐거운 지저귐도 들려왔다. 많은 사람이 이 놀라운 자연의 기적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하지만 한때 광야였던 그곳이 아름다운 생명의 숲으로 바뀐 것이 한 늙은 목동의 수고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희망은 그런 이들의 묵묵한 헌신을 통해 시나브로 자라는 거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희망을 묻는 질문 앞에서 떠오른 또 다른 사람은 나가오 마키 목사였다. 그는 일본의 기독교사회운동가이자 평화주의자였던 가가와 도요히코를 그 아름다운 사역으로 이끈 인물로 기억된다. 가가와의 눈에 비친 나가오는 “가난 박해 고난으로 가득 찬 그리스도교의 길을 신앙의 힘으로 극복해 나가는 무사적 수행을 한 그리스도교의 무사”였다.

가가와는 거지들을 지극히 공손하게 대하며 돌보는 그의 모습에서 생명의 예술을 발견했다. 나가오 목사는 많은 회중 앞에 선 적이 없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의 목회가 실패라고 단정할 수 없다. 가가와가 말하듯 그는 ‘완전한 그리스도교 예술의 모범’이었으니 말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은 한 사람의 존재가 더욱 중요하다는 말을 나는 차마 할 수 없었다.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사람이 할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청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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