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야생동물과의 공존, 이제 실천할 때

국민일보

[기고] 야생동물과의 공존, 이제 실천할 때

유제철 환경부 차관

입력 2023-06-08 04:01

인류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건설했던 수메르인들은 기원전 3500년 무렵부터 서아시아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에서 물을 끌어들일 농수로를 만들어 인류 역사상 최초로 관개농업을 시작했다. 모래를 녹여 유리를 처음으로 제작한 것도 이들이라고 한다. 수메르인의 농수로와 유리 제작 기법은 전 세계에 퍼졌고 발전을 거듭했다. 눈부신 기술 발전 덕에 창(窓)뿐만 아니라 건물 외벽과 방음벽까지 유리로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관련 기술이 발전할수록 야생동물에게 닥칠 치명적인 위험은 점점 커지고 있다.

유리의 반사면을 하늘로 착각한 새들이 유리벽에 충돌하는 치명적인 피해가 나타난 것이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이 2017년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하루 2만 마리의 새들이 유리창에 충돌해 죽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연간 800만 마리에 달하며 개체군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엄청난 규모다.

또한 경사가 직각인 콘크리트 농수로는 우리나라에 약 9만㎞가 설치돼 있다. 이런 농수로는 유지 관리가 쉽고 물이 잘 흘러 공학적인 효율성은 검증됐지만 개구리, 두꺼비, 뱀과 같은 작은 동물의 이동을 단절하고 이들 야생동물이 추락할 경우 빠져나오지 못하는 함정이 된다. 연간 9만 마리에 이르는 야생동물이 이 같은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유리창 충돌과 농수로 추락으로 고통을 겪고 희생되는 야생동물을 줄이기 위한 활동은 우리 사회가 야생생물과의 공존을 위해 실천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됐다.

이에 정부는 야생동물의 충돌·추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 등 관련 기관과 힘을 모으고 있다. 현재 38곳의 지자체에서 야생조류 충돌 예방을 위한 조례를 만들었고, 864건의 조류 충돌 저감제품 구매를 지원했다. 환경부는 ‘야생동물 수로 탈출시설 설치 가이드북’을 2021년 전국에 배포하는 등 관련 시설 설치를 위한 지원을 늘리고 있다.

이런 노력과 참여를 바탕으로 지난해 6월 인공구조물로 인한 야생동물의 충돌·추락 피해 저감 의무화를 정부, 지자체, 공공기관에 부여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다. 이 개정 법률안은 오는 11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 공공 주도의 건물이나 방음벽에 유리를 사용하면 야생조류 충돌 예방 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한 농수로로 인한 야생동물의 추락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각 기관은 담당 농수로를 관리해야 한다.

우리는 한 해 수백만 마리의 야생동물을 희생시키는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는 생물 다양성을 보전하고 야생동물과 공존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야생동물과 공존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실천을 기대한다.

유제철 환경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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