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미국의 디폴트 위기와 선진국 함정

국민일보

[여의도포럼] 미국의 디폴트 위기와 선진국 함정

최영진 전 주미대사

입력 2023-06-08 04:02

빈부격차의 확대와 국가 부채 통한 복지가 동시에 진행되는 악순환…
이런 선진국 함정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어

빈부격차 계속될 경우 중산층 줄고 부유-빈곤 둘로 분열돼
서양 문명 몰락한다는 지적도

함정 빠지지 않으려면 경쟁과 협력의 균형 있는 공존 필요
정부와 국민이 함께하는 건전 정책 추구해야 생존·번영 가능

미국의 국가 부채는 매년 증가해 문제가 된다. 미국이 부채를 갚지 못해 생기는 디폴트 위기는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까지 파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디폴트가 발생하지 않도록 행정부와 의회 사이에는 항상 합의가 이뤄진다. 지난주인 6월 초 합의가 그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디폴트 위기는 단지 하나의 증상에 지나지 않는다. 본질적인 문제, 즉 ‘선진국 함정’은 계속 외면하고 있다. 현재 미국 부채의 많은 부분이 복지 비용에 사용되고 있다. 부자들은 매년 그들의 부를 늘리는 반면 나머지 사람들은 국가 부채로 복지 서비스를 받고 있다. ‘빈부격차의 확대’와 ‘빚을 통한 복지’가 동시에 진행되는 악순환이 바로 선진국 함정이다.

이 함정에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 모두가 빠져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미국은 코로나 사태 3년 동안 의회도 장악한 조 바이든 행정부가 국가 부채를 크게 증가시켰다. 2017년 20조 달러였던 부채가 몇 년 사이에 31조 달러가 됐다. 반면 코로나 사태 동안 중국은 선진국과 달리 국민에게 직접 돈을 분배하는 대신 경제 부문별로 투자하는 데 집중했다. 문재인정부는 선진국처럼 국채, 즉 빚을 내어 이를 국민에게 분배했다. 무더운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과거 정부는 국영기업인 한국전력의 적자를 국채를 발행해 메우는 방식을 사용하면서 전기요금 인상은 피해왔다. 지난해 한전의 적자는 32조원에 달했다.

2007∼2008년의 글로벌 금융 위기, 2009∼2011년의 유로 위기, 그리고 미국의 디폴트 위기는 단순한 금융 문제가 아니다. 서양 정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선진국 정당은 선거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자들의 지원을 받아야 하므로 부자들을 더욱 부자로 만드는 제도를 유지한다. 동시에 부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국채로 빚을 통한 복지를 시행한다. 그리고 이런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체제의 위기는 장클로드 융커(룩셈부르크 총리와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역임)가 한 말에서 잘 드러난다. 융커는 “우리 지도자들은 유로 위기에 직면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행동하면 선거에서 승리할 수가 없는 것이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몇 년 전 영국의 BBC는 ‘서양 문명은 어떻게 몰락하는가(How Western Civilization could collapse)’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는 개인의 자유, 사회적 관용, 다당제 민주주의 등을 가치 기반으로 삼은 서양 문명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한 가지는 기후변화이고, 다른 한 가지는 빈부격차 확대다. 역사적으로 엘리트 그룹이 자신들의 부의 증가에만 집중하고 대다수의 생활에 무관심하게 된다면 그런 체제는 결국 소멸하게 된다는 것을 경험했다. 미국과 영국에서 빈부격차 추세가 계속될 경우 2050년쯤에는 중산층이 줄어들고, 국민들이 부유-빈곤 두 부분으로 분열되면 서양 문명이 몰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빈부격차 확대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함께 일어나는 현상이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10명의 재산을 합친 금액은 전 세계 인구의 하위 50%인 36억명의 재산을 합친 것을 능가하고 있다.

선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싱가포르의 고 리콴유 총리가 미국 하버드대학과 함께 발간한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음양론처럼 공존과 협력을 균형 있게 유지하자는 것이다. “사회가 성공하려면… 경쟁과 협력이 공존해야 한다. 공산주의처럼 모든 사람이 결과를 공유하면 발전이 없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소멸했다. 반면 경쟁에만 집중해 성공한 사람이 모든 것을 취하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가질 것이 없게 되면 빈부격차가 확대된다. 미국이 그런 것처럼 결국은 사회의 균형과 공평성이 깨진다… 이런 상황에서 서양 자유주의자들은 국민을 선동해 수치심도 내던지고 복지를 하나의 권리처럼 계속 주장한다. 결국 복지 비용이 폭발적으로 팽창한다.”

우리는 이제 선진국 함정에 빠진 서양이 하는 것을 그대로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 선진국은 몰락하는데 선진국을 멘토로 삼아온 우리가 살아남는 생존의 선택은 쉽지 않다. 어렵지만 융커와 리콴유가 지적한 문제와 방법을 상기해야 한다. 정부와 국민이 함께하는 건전한 정책을 추구해야 생존과 번영이 가능하다.

최영진 전 주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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