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리나 칸의 위기와 공정위

국민일보

[데스크시각] 리나 칸의 위기와 공정위

이성규 경제부장

입력 2023-06-08 04:07 수정 2023-06-08 04:07

미국 경쟁당국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 리나 칸의 별명은 ‘아마존 킬러’다. 그녀는 2017년 예일대 로스쿨 박사과정을 졸업하면서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이란 논문을 발표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아마존이 시장지배력 확장을 위해 수익을 포기하는 전략은 독점화를 위한 술책이기 때문에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사전 규제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21년 6월, 만 32세의 컬럼비아대 로스쿨 부교수인 리나 칸을 FTC 위원장에 임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재벌 저격수’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첫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처럼 바이든 대통령도 빅테크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는 포석이었다.

그러나 취임 후 2년을 채운 칸 위원장의 빅테크 규제강화 정책은 사실상 실패했다. 칸 위원장의 시도는 번번이 국회와 법원에 막혔다. 법원은 올해 초 FTC가 페이스북 모기업 메타의 가상현실(VR) 업체 위딘의 인수를 막기 위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메타가 충분히 연구개발을 통해 VR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데 위딘 인수로 시장 질서를 훼손한다는 FTC 논리는 먹혀들지 않았다. FTC가 빅테크기업 규제를 파격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만들었던 2개 법안 역시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지난해 말 폐기됐다. 대신 미 정부는 미국 내 ‘틱톡’ 사용 전면 금지를 추진하는 등 중국 플랫폼 기업 견제에 나서고 있다. 반면 ‘토종’ 빅테크 기업이 전무한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은 구글 등 미국 기업을 겨냥한 디지털시장법(DMA)을 제정, 시행 중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격언이 기업 불공정행위를 막기 위한 전 세계 경쟁법 집행에 알게 모르게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칸 위원장이 칼을 겨눈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은 전 세계의 부(富)를 빨아들이며 미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아무리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더라도 이들 기업의 불공정행위를 규제해야 한다는 칸 위원장의 목소리는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이런 추세와 관련해 공정위도 두 가지 현안에 직면해 있다. 우선 카카오와 네이버 등 대형 플랫폼의 독과점을 어떻게 막을지에 대해서다. 윤석열정부는 지난 정부 때 추진했던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 제정 대신 자율규제를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터진 ‘카카오톡 먹통 사태’를 계기로 EU처럼 강력한 온플법 제정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또 하나는 삼성이 최근 문제 제기한 ‘브로드컴 동의의결 방안’에 대한 시정 요구다. 미 반도체 기업인 브로드컴은 스마트폰 등에 들어가는 부품을 공급하면서 삼성 등 국내 제조업체에 ‘갑질’한 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받던 중 지난해 7월 동의의결을 신청했다. 동의의결이란 문제를 일으킨 사업자가 스스로 피해 구제 방안을 마련하면 위법 여부를 따지지 않고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다. 공정위는 당시 삼성 등 피해 업체의 의견을 수렴해 200억원 상당의 동의의결안을 결정했다. 지난 2월 관계부처 의견수렴 절차까지 마쳐 사실상 확정된 상황인데 삼성이 뒤늦게 200억원이 아닌 수천억원의 실질적인 피해 구제 방안이 담겨야 한다고 요구한 상황이다.

만약 공정위가 법을 통한 사전규제라는 경쟁법 원칙에 맞춰 한국판 DMA를 만든다면 업계에서는 국내 플랫폼 산업 발전에 족쇄가 될 것이라는 반대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반대로 삼성의 의견을 받아들여 브로드컴 동의의결안 수정을 추진한다면 동의의결 절차에는 어긋나지만 국내 기업의 피해 구제라는 실익을 챙겼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다. 미국, EU와 함께 세계 3대 경쟁당국으로 꼽히는 공정위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이성규 경제부장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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