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병석 (9) 난생처음 잡아 본 기타 코드… 음악의 묘한 매력에 ‘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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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조병석 (9) 난생처음 잡아 본 기타 코드… 음악의 묘한 매력에 ‘풍덩’

공부보다 기타연주에 빠져버린 짝꿍
미래위해 공부도 같이하라 설득하다
서로 기타와 공부 가르쳐주기로 합의

입력 2023-06-0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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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여행스케치의 리더 조병석씨가 기타를 만들 때 사용한 사과나무 상자.

졸업반이자 중학 시절의 꽃망울인 3학년이 됐다. 고교 진학을 위해선 연합고사를 치러야 했고, 200점 만점 중 통상 140점 이상을 맞아야 괜찮은 수준의 고등학교에 입학이 가능했던 때였다.

면학 분위기상 야간 자율학습 시간까지 남아서 하는 공부는 필수였고, 매점 이용이나 외출 승낙까지도 너무 딱딱했던 때라 대부분 점심 저녁 두 끼의 도시락을 지참하고 등교했다.

그 시절 나는 성적이 늘 하위권을 맴돌았다. 그리로 내 옆자리엔 공부를 게을리하는 짝꿍도 있었다. 짝꿍은 교과서나 참고서 대신 항상 노래책을 펼쳐놓고 기타를 치는 주법과 코드 누르는 흉내를 냈다. 나는 짝을 볼 때마다 “친구야, 너 시험공부는 안 할 거니?”라며 늘 잔소리를 했다. 그때마다 짝꿍은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며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응수했다.

연합고사 시험일은 점점 다가왔지만 공부에 무관심한 짝을 보며 나는 물었다. “그게 그렇게도 좋으니?” 짝은 “너도 음악의 세계에 한 번 풍덩 빠져 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인생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나는 또 물었다. “네가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쉬지도 않고 연습을 하고 있는 그 기타라는 악기를 치는 게 그렇게도 중요한 거니?”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고 해도 고등학교 진학을 해야 더 자유롭게 그 일을 할 수 있는 거라. 나는 짝을 열심히 설득했다. 결국 마무리 된 합의점. 짝은 기타 레슨을, 나는 공부 지도를. 서로가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시스템을 가동하게 된 셈이다.

연합고사를 준비하는 중3의 ‘발전적인 콜라보’였다고 지금은 생각하지만 공책에 그려준 기타 코드를 난생 처음 손가락으로 잡아 보고 그림의 모양을 외우다보니 나도 어느새 음악이라는 깊고 따뜻한 바다에 슬그머니 빠지는 것 같은 묘한 매력을 느꼈다.

단 현실적인 걸림돌이 됐던 건 가정 형편상 나에겐 통기타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도 기타 코드는 그림으로 인식 돼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외웠고 숙지했다. 짝은 놀랄 만큼 일취월장하고 있다며 부러워했다.

수업 시간이든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든 나는 짝의 시험공부에 진심으로 조언과 협력을 했고 짝은 기타 선생님이 돼 나를 신비로운 음악의 세계로 안내해주는 열정을 보였다.

합력해 선을 이뤄 영광을 돌린다는 성경의 말씀처럼, 몇 달이 지난 후 작은 열매로 돌아 온 것이 있었다. 연합고사를 잘 봐서 원했던 인문계 고교에 합격한 짝. 사과나무 상자로 연습용 통기타를 직접 만들어 짝보다도 앞선 기타연주를 선보이는 나.

사과나무 상자를 시장에서 얻어 와 분해를 하고, 톱질을 하고 못질을 하고 색칠을 하고 굵은 실과 가는 실을 잘 엮어 기타 6줄로 만들어 장착한 통기타. 제대로 튜닝 조율이 된 악기가 아닌 무늬만 기타였겠지만, 밥 먹을 때나 잠 잘 때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늘 곁에 뒀다.

그때 그 ‘사과나무 상자 벙어리 기타’의 작은 울림은 오늘도 감사와 은혜가 돼 온 세상을 따뜻하게 연주하고 있다.

정리=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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