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어쩌면 우리는 외로워서 싸우는 걸지도…

국민일보

[태원준 칼럼] 어쩌면 우리는 외로워서 싸우는 걸지도…

입력 2023-06-09 04:20

대립을 넘어 혐오로 치닫는
진영 갈등과 정치 양극화
그 적대감의 연원을 추적한
美 최고 닥터와 英 경제학자
‘외로움’서 비롯됐다 진단

“외로움 위기는 병원뿐 아니라
투표소에서도 모습 드러낸다”

사회적 고립도 OECD 5위 한국
개딸 등 배타적 정치집단 활개
외로움, 그저 고독사 문제로
접근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제임스란 이름의 환자는 심각한 고혈압과 당뇨를 앓고 있었다. 차트를 살펴보는 젊은 의사에게 툭 내뱉었다. “복권에 당첨되지 말았어야 했어요.” 빵 굽는 일을 하다 거액 복권에 당첨돼 빵집을 그만두고 호숫가 부촌의 저택을 샀다고 했다. 집집마다 높은 담이 둘러쳐진 동네에서 이웃은 얼굴 보기도 어려웠고, 그가 참견할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평생 먹고살 돈이 생겼지만, 같이 빵을 굽던 동료와, 매일 찾아오는 손님과, 늘 부대끼는 이웃과 나누던 대화를 잃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뚱뚱해지더니 당뇨와 고혈압이 차례로 찾아왔다는 얘기가 끝났을 때 의사는 당황했다고 한다. 병의 원인을 찾았는데, 그것은 외로움이었다. 사회적 관계의 단절이 부른 육체의 질병. 인슐린 수치는 조절해도 외로움을 치료해줄 순 없었던 그 의사, 비베크 머시는 지금 미국인의 건강을 책임지는 서전 제너럴(의무총감)이 돼 있다. 지난달 미국 사회의 긴급한 보건 위기를 진단해 보고서를 냈다. 제목은 ‘외로움과 고립감이란 유행병’.

젊은 의사가 서전 제너럴에 오르는 동안 외로움의 치명성은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최근에는 8시간 동안 외로우면 8시간을 굶는 것만큼 에너지가 고갈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렇게 외로운 시간이 누적되면 뇌졸중에 걸릴 확률은 32%, 치매는 64%, 조기 사망은 30% 높아진다. 머시가 미국에 발령한 ‘외로움 주의보’는 이런 위험을 경고한 것인데, 거기서 머물지 않았다. 그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 이렇게 썼다.

“외로움은 공동체를 망가뜨립니다. 사회적 단절은 일터에서 생산성을, 학교에서 성취도를, 시민사회에서 참여도를 떨어뜨립니다. 관계를 복원하지 못하면 우리는 양극화(polarization)에 더욱 취약해질 겁니다.” 트럼프의 등장 이후 미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히는 정치적 양극화, 민주당과 공화당의 두 진영이 서로를 혐오하는 극단적 분열도 결국 외롭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의사 머시가 질병을 치료하다 주목한 외로움의 정치적 위험을 영국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자본주의 병리현상을 연구하다 발견했다. 2021년 펴낸 책 ‘고립의 시대’에 “외로움 위기는 병원에서뿐 아니라 투표소에서도 모습을 드러낸다”고 썼다. 이 책에는 “외로움이 정치 양극화를 초래한다”는 머시의 진단을 뒷받침할 근거들이 망라돼 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지지층은 “운동 클럽이나 학부모 모임 같은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비율이 경쟁후보 지지층보다 2배나 높았다.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구에게 의지하냐”는 질문에 친구나 이웃을 말하는 대신 “스스로 해결한다”고 답한 이가 월등히 많았다. 이렇게 사회적 관계가 결여된 외로운 이들이 프랑스에선 극우파 국민연합당에, 네덜란드에선 민족주의 포퓰리즘 자유당에, 이탈리아에선 반이민주의 동맹당에 표를 몰아주고 있었다.

외로운 사람의 뇌는 타인의 고통을 대할 때 공감 능력을 관장하는 측두정엽 활성도가 오히려 낮아지고, 경계심과 밀접한 시각피질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주변 환경을 위협적, 적대적인 것으로 인식하기에 타협과 조율이 필요한 공동체를 기피하는 것이다. 대신 자신과 비슷한 이들을 찾아 소속감을 얻으려 하는데, 확증편향의 SNS가 그런 이들의 집단화·세력화를 가능케 했다.

그렇게 모여든 지지자 집회에서 트럼프는 항상 ‘우리’란 주어를 사용하며 소속감을 채워줬다. 외로운 이들의 폐쇄적 정치 공동체에서 ‘우리’는 우리와 다른 ‘그들’을 전제로 하는 말이었고, ‘그들’에 해당하는 민주당이나 이민자나 기성 정치권을 이들은 시각피질의 활성화와 함께 ‘나를 위협하는 적’으로 인식했다. 워싱턴 의사당 난입이란 극단적 행태까지 낳은 그 적대감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외로움이란 감정이 있다는 것이 머시와 허츠의 진단이다.

한국도 이미 외로운 사회가 됐다. 한국인의 사회적 고립도는 OECD에서 다섯 번째로 높다. 1인 가구가 30%를 넘어섰고, 10명 중 4명은 “도움이 필요할 때 의지할 사람이 없다”고 답한다. 동시에 보수-진보 갈등은 대립을 넘어 혐오 수준으로 증폭됐다. ‘개딸’ 같은 배타적 집단이 출현해 적대감 가득한 문자폭탄을 퍼붓고 있다. 지난 3년여 거리두기로 무척 외로웠던 시기에 진영 싸움이 최고조로 치달은 건 우연이었을까? 외로움, 단순히 고독사 문제로 접근할 일이 아닌 것 같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