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 관한 거의 모든 것] 한국의 빌 벤슬리를 위하여

국민일보

[호텔에 관한 거의 모든 것] 한국의 빌 벤슬리를 위하여

한이경 폴라리스어드바이저 대표

입력 2023-06-10 04:03

워크숍을 위해 베트남 푸꾸옥섬 JW메리어트 리조트에 다녀왔다. 지도를 보니 이 섬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더 가까웠다. 한국에서 가기도 힘들어 출발할 때 투덜거리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하노이를 거쳐 푸꾸옥섬에 도착하니 열대 기후의 습하고 눅눅한 느낌이 몰려왔다. 하지만 차를 타고 리조트에 가까워질수록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마침내 도착하니 순식간에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 같았다. 미국 플로리다의 디즈니랜드가 아이들을 위한 환상의 세계라면 이곳은 어른들을 위한 디즈니랜드 같았다.

푸꾸옥 JW메리어트 리조트는 최고의 리조트 디자이너라고 불리는 빌 벤슬리의 작품이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조경을 공부한 그는 특히 색깔을 자유자재로 쓸 줄 아는 천재다. 일찌감치 아시아로 넘어와서 활동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50개국에서 200개가 넘는 리조트를 디자인했다. 조경, 건축, 인테리어 등 전 영역에 걸쳐 워낙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기에 메리어트 같은 글로벌 호텔 회사도 그에게 맡긴 뒤에는 디자인에 거의 간섭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참고로 올해 오픈한 제주 JW메리어트 리조트 또한 그의 작품이다. 평소 지나치게 큰 규모의 호텔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그는 베트남 썬그룹의 의뢰로 푸꾸옥 JW메리어트 리조트를 맡아 19세기 프랑스 라막(Lamarck)대학 캠퍼스의 재현을 리조트 콘셉트로 설정, 구현했다.

내가 머문 객실은 농대 건물이었다. 건물 곳곳에 농업 관련 소품들이 가득했다. 다른 객실 건물들 이름 또한 미대, 건축과, 동식물과 등 그동안 접해본 리조트의 작명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바(Bar)가 있는 건물명은 화학과였는데 음료와 안주가 실험용 비커에 담겨 나왔다. 이런 식으로 곳곳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무엇보다도 아무것도 없던 정글 상태의 푸꾸옥섬에 19세기 프랑스 대학 캠퍼스를 라스베이거스나 플로리다 디즈니랜드보다 더 섬세하고 진정성 있게 구현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진정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은 이 리조트 세팅을 위해 프랑스의 벼룩시장과 골동품시장 등을 뒤져 컨테이너 약 50개 분량의 소품들을 구입했다는 것이다. 그런 노력 덕분에 공간의 사방팔방을 돌아봐도 액자에서부터 심지어 가구의 서랍 손잡이까지 마치 프랑스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디테일을 향한 빌 벤슬리의 집착은 제주 JW메리어트 리조트에서도 드러난다. 이 리조트를 채울 소품을 위해서 그의 팀이 서울 장안평을 이 잡듯 뒤졌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베트남의 섬에 19세기 프랑스 대학 캠퍼스를 재현한다는, 얼핏 들으면 유치하게 여길 수 있는 아이디어를 진정성과 디테일을 향한 집착을 통해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어낸 그의 작품을 보고 있자니 우리는 어떤가 돌아보게도 됐다. 남다른 시선, 진정성, 디테일로 중무장한, 한국만의 색깔을 가진 세계적인 리조트가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돌아오는 길 내내 생각이 많아졌다.

한이경 폴라리스어드바이저 대표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