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악을 퍼뜨리는 선정 보도

국민일보

[바이블시론] 악을 퍼뜨리는 선정 보도

손화철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입력 2023-06-09 04:02

정유정이라는 살인 범죄자의 사진이 매일 온라인 뉴스에 올라오고 종합편성채널(종편)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별달리 새로운 소식이 없는데도 이 사건에 대한 보도와 대담이 계속 이어진다. 범행 후 CCTV에 찍힌 정유정의 걸음걸이부터 유치장에서 지어 보인 표정까지 모두 평가와 분석의 대상이 되고, 이 사람의 심리 상태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에 대한 전문가 의견도 끊임없이 쏟아진다. 이 일이 끔찍한 것이고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과연 이런 보도 행태가 정상적이고 사회적으로 유익한지 의문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 모든 언론 보도가 피해자에 대한 배려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가족과 친구가 잔혹하게 살해된 사건이 마치 스포츠나 연예계의 풍문처럼 다루어지고 있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에서 슬픔과 비탄에 빠진 당사자를 돕는 방법은 그들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일이다. 그런데 범인의 일거수일투족과 이런저런 추측에 매몰된 나머지 어느새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은 완전히 잊혀진다. 보도를 접하는 사람도 피해자와 그 가족의 고통에 공감하는 대신 사건에 대한 변태적인 관심을 충족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부적절한 선정 보도는 지나친 경쟁과 이기심에서 비롯된다. 대중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극심한 경쟁 상황에서 자극적인 사건이 터지면 거기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현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비극을 자기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부도덕하다. 보도에 등장하는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경찰의 사건 해결을 돕는 대신 자신의 전문가적 해석과 추측을 무차별적으로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일인지 생각해야 한다.

이런 식의 보도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확인되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은 사안을 자꾸 다루어 사람들의 관심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면 자연히 권력기관의 반응을 살피게 되고, 그렇게 되면 수사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어려움이 생긴다. 따라서 언론이 먼저 할 일은 경찰이 그 책임과 권한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에서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 이후에 수사의 과정이나 결과, 맥락과 배경을 잘 살펴서 알려야 할 바를 알리는 역할을 담당하면 된다.

과거 미국의 CNN 뉴스가 이라크 전쟁 상황을 실시간으로 방영하고 시청자는 이를 실감 나는 영화처럼 소비해서 논란이 인 적이 있다. 그 논란이 무색하게 이후 텔레비전 뉴스는 점점 리얼리티 쇼처럼 변해가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온라인 미디어 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이전과는 달리 누구나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유사 뉴스를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관심 끌기 경쟁의 도가 날로 심해진다. 이미 우리 사회도 선정 보도에 익숙해져서 남의 고통을 재빨리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바꾸는 일에 무감해진 듯하다.

복합적인 원인의 결과로 일어난 일이니 누구 탓을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책임질 사람이 없다 해서 선정 보도로 인한 고통과 피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관련 주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적어도 공신력을 가진 언론 매체는 황색언론이나 개인 방송과의 선정성 경쟁을 포기해야 한다. 시민들도 이런 보도에서 애써 눈을 돌려야 한다. 시민들이 특별히 내용도 없는 반복적인 기사나 방송 보도를 막연히 읽고 보는 것만 자제해도 언론이 선정성 경쟁에 뛰어들려는 유혹을 참는 데 도움이 된다.

다른 사람을 속이고 죽이는 악이 우리를 몸서리치게 한다. 그러나 그 끔찍한 이야기를 이상한 방식으로 소비하는 우리의 약함 또한 무섭지 않은가. 선정 보도는 사람의 약함을 악화시켜 퍼뜨리는 악마의 도구다.

손화철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