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 헌재에 기대지 말고 종신형을 허하라

국민일보

[박정태 칼럼] 헌재에 기대지 말고 종신형을 허하라

입력 2023-08-01 04:20

충격적인 신림역 묻지마 살인
22세 모범 대학생 허망한 죽음
유족들은 가해자 사형 촉구
국민 법감정도 다르지 않아

현실은 사형제 사문화로 법원
선고와 집행 이뤄지지 않아
무기징역 판결에 원성 잇달아
유족들 아픔 보듬을 대안 필요

사형제 위헌 여부에 대한 헌재
판단과는 별도로 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 도입 목소리 커
정부와 국회 서둘러 논의해야

서울 신림역 ‘묻지마 살인’ 사건 희생자의 사촌 형이라고 밝힌 김모씨가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글을 올려 가해자에게 ‘사형’이라는 가장 엄정한 처벌을 요청한다고 절규했다. 이번과 같은 억울한 사망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회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라고 한다. 희생자는 고3 때 암투병하던 어머니를 여읜 채 수능을 치러 대학에 합격한 모범생이었고, 외국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과외와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며 남동생을 돌보던 만 22살 청년이었다. 근데 악마 같은 자와 마주쳐 끔찍한 변을 당했다. 참으로 허망한 죽음 앞에 유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게다. 사형 청원은 당연한 주문이라 하겠다.

충격적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반사회적 흉악범에 대한 사형 집행 여론은 거세진다. 지난해 10월 경기도 안산에서 묻지마 살인범에게 30대 아들을 잃은 아버지도, 같은 해 12월 파주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살해당한 60대 택시기사의 딸도 “모든 것이 한순간 생지옥으로 변해버렸다”며 사형제 부활을 청원한 바 있다. 국민 법감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라는 점에서 사형제는 사문화된 지 오래다. 1997년 12월 사형수 23명에 대한 마지막 사형 집행 이후 26년째 집행이 중단됐다. 그렇기에 법원에서도 상급심으로 올라갈수록 사형 선고를 꺼리는 실정이다. 대법원의 사형 확정 판결은 2016년 총기 난동 사건으로 동료 5명을 살해한 임모 병장을 끝으로 사라졌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과 아파트 방화 살인 사건의 안인득은 1심에서 사형이 언도됐으나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하급심에선 어쩔 수 없이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가석방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거나 종신형 도입 필요성을 제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석방 없이 피고인의 숨이 멎는 날까지 무기징역형이 철저하게 집행되는 것만이 피해자 원혼을 조금이나마 달래는 길”(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입법부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제도를 조속히 입법해 대한민국에서 국민들이 흉악한 범죄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지기를 바란다”(광주고법)…. 법원 내에서 이런 고언을 토로하는 건 무기수의 경우 20년 지나면 가석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기징역형이 사형을 근본적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재판 현장의 목소리는 결국 한곳으로 모아진다. 바로 영구적 격리를 위한 종신형이다. 사형제 폐지가 세계적 흐름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유럽연합은 이미 사형제를 폐지하고 종신형을 도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미국 일본 한국만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가석방 없는 종신형도 있다. 사형제가 식민지 잔재라는 인식을 갖는 아프리카에서도 사형제 폐지 바람은 거세다. 93년 이후 사형 집행을 중단한 가나가 지난주 아프리카연맹 54개국 중 29번째로 사형제를 아예 없앤 국가가 됐다.

헌법재판소가 머지않아 사형제의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릴 예정이지만 정부가 여기에 매달릴 이유는 없다. 헌재가 두 차례 합헌 결정(1996년 재판관 7대 2, 2010년 5대 4)을 내렸지만 시대적 변화 및 생명권 존중 등에 맞춰 이번 세 번째 심리에선 종전 판단을 뒤집을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다면 당연히 사형 대체 형벌을 마련해야 한다. 대안은 절대적 종신형이다. 가석방, 사면, 감형이 불가능한 종신형을 의미한다. 설령 합헌이 유지된다 해도 실제 사형이 선고·집행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할 때 정부가 사형제 폐지 여부와 상관없이 주체적으로 종신형 도입 문제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국회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야 무고하게 희생된 피해자 유족들의 원통함이 조금이나마 풀릴 수 있을 게다. 엄연히 사형이라는 형벌이 존재함에도 극악무도한 자에게 무기징역 판결이 내려지는데 대한 유족들의 원성이 끊이지 않았던 게 저간의 사정 아닌가. 최근 미 텍사스 연방지법은 총기 난사로 23명을 살해하고 22명을 다치게 한 피고인에게 각각의 범행에 두 종류의 혐의를 모두 적용해 ‘90회 연속 종신형’을 선고했다. 비현실적이지만 유족들의 아픔을 보듬고 흉악범을 평생 감옥에서 썩게 만들겠다는 사법부의 의지를 드러낸 엄중한 판결이다. 우리도 가해자보다는 피해자 인권과 보호를 우선시해야 한다. 이제는 정부가 여론의 눈치를 보며 회피할 때가 아니다. 종신형 도입은 서둘러 논의해야 할 국가 정책적 문제가 됐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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