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사역이 힘들 때 환대·치유의 동굴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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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목회자를 위한 힐링의 안식처 양평 ‘아둘람의 집’을 가다

입력 2023-08-05 03:01 수정 2023-08-0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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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아둘람의 집’ 전경. 높은 층고가 인상적인 견고한 목조 주택이다. 양평=신석현 포토그래퍼

성경에서 아둘람 굴은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 왕의 눈을 피해 다윗이 은신한 장소로 나온다. 여기엔 다윗처럼 환난을 겪은 자, 마음이 원통한 자 등 400명이 모여들면서 아둘람은 ‘지친 이를 위한 피난처’의 대명사로 불린다.(삼상 22:1~2)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의 ‘아둘람의 집’은 이 아둘람 굴을 본뜬 공간이다. 연구와 목회로 지친 신학자와 목회자를 위한 피난처로 박보경 장로회신학대 선교학과 교수가 1년여 준비 끝에 세웠다. 이 공간을 지은 김복린 전 인제대 의과대학 교수와 아내 임해련 집사가 박 교수의 취지에 공감해 건물 구매 비용을 낮추고 물품 및 재능 기부도 제공하면서 아둘람의 집 사역은 탄력을 받았다. 양평 명소인 두물머리에서 차로 30분 거리의 호젓한 동네에 자리한 이곳을 최근 찾았다.

독대와 환대의 공간

독대의 공간 입구에 있는 ‘환대의 창’.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주님의 환대를 표현했다. 양평=신석현 포토그래퍼

아둘람의 집은 ‘독대의 공간’과 ‘환대의 공간’이란 두 개의 공간으로 구성됐다. 독대의 공간은 이름 그대로 하나님과 홀로 마주하며 예배하는 장소다. 진회색 벽에 스테인드글라스를 장식한 좁은 창문 8개를 배치해 한낮에도 은은한 빛만 스미도록 제작했다. 최소한의 빛만 허락된 공간이지만 격자형 나무로 덧대진 천장 덕에 포근한 느낌을 준다.

아치형 창문이 배열된 이곳의 벽 한 편은 ‘위로의 벽’으로, 다른 한 편은 ‘통찰의 벽’으로 불린다. 하나님과의 독대에 있어선 위로뿐 아니라 삶을 반추하며 그분의 뜻을 깨닫는 통찰의 과정이 긴요하다는 취지다. 이 공간을 기획한 오동섭 미와십자가교회 목사는 “독대의 공간 콘셉트는 ‘단순’ ‘침묵’ ‘빛’ 세 가지”라며 “하나님 앞에서 쉼과 회복, 새로운 영적 통찰을 얻는 공간이란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독대의 공간에 놓인 돌덩어리 조형물로 이름은 ‘하나님의 피난처’. 양평=신석현 포토그래퍼

나무 십자가가 중앙에 걸린 강대상 왼쪽에는 크고 작은 돌덩어리가 놓였다.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삼하 22:3)란 말씀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강대상 맞은편엔 ‘경청의 창’을 낸 흰색 가벽을 설치했다. 우리네 고민을 경청하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라는 의미로 조성됐다.

아둘람의 집은 2개 공간으로 구성됐다. 예배당인 ‘독대의 공간’에서 ‘환대의 공간’으로 올라가는 ‘환대의 계단’. 양평=신석현 포토그래퍼

경청의 창을 지나 출입문을 나서면 ‘환대의 계단’이 눈 앞에 펼쳐진다. 숙소가 있는 환대의 공간으로 이어주는 좁은 층계다. 계단을 올라 작은 텃밭과 정원을 지나면 높은 층고가 인상적인 이층집이 나타난다. 방 3개와 부엌, 거실과 화장실 2개를 갖춘 견고한 목조주택이다. 테라스엔 작은 십자가와 소파, 테이블을 놓아 숙소 내 기도 공간으로 꾸몄다.

고난 속 하나님 뜻 헤아리기

지난달 20일 ‘아둘람의 집 오픈 기념 감사예배’를 연 이곳엔 안식년을 맞은 박 교수와 그의 맏딸이 함께 지내고 있다. 박 교수의 남편인 고(故) 장요한 목사의 사역을 어릴 때부터 도우며 자란 첫째는 전액 장학금을 받고 미국 콜게이트대를 졸업한 재원이다. 장애가 있는 성도를 돕다 변호사의 꿈을 발견하고 이를 준비해오던 그는 지난 6월 갑상샘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전액 장학금 지원을 약속한 아이오와대 로스쿨 입학을 2개월여 앞둔 시점이었다. 박 교수의 남편 역시 2017년 암으로 53세에 별세한 터라 충격은 더 컸다.

“딸이 이렇게 기도하더군요. ‘변호사가 제 소명이라 확신했는데 왜 길을 막으시나요.’ 딸에겐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이, 제겐 아픈 자녀를 환대하는 시간이 절실했습니다.”

아둘람의 집 1호 수혜자로 최근 이곳을 찾은 모녀의 생활은 수도자처럼 담박해졌다. 딸은 매일 오전 9시 독대의 공간에서 삶의 방향을 놓고 기도한다. 숲속을 거닐며 묵상의 시간을 갖고 종종 인근 생식원에서 효소 찜질도 받는다. 주변 교회 목회자의 도움으로 침묵기도법도 배우고 있다.

이 사이 엄마는 텃밭에서 난 채소로 친환경 밥상을 차리며 딸의 회복을 돕는다. 딸은 하나님과의 독대에, 엄마는 자녀를 위한 환대에 전무하는 셈이다. 박 교수는 “고통 가운데 자신을 돌아보는 독대도, 온전히 한 사람을 섬기는 일에 몰입하는 환대도 모두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며 “이곳에서 우리는 독대와 환대의 기회를 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며 그분 방향대로 삶을 조정하려 한다”고 했다.

아둘람의 집에 남은 방 2칸은 이들 모녀처럼 심신의 치유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개방했다. 이용료는 따로 없으나 입실 조건은 있다. 세파에 시달려 방향을 잃었거나 재충전이 시급한 이중직 목회자와 신진 신학자가 대상이다. 이들 대상 중 전원생활 속에서 질병을 다스리고자 하는 이라면 더욱 적합하다.

변방의 정체성
독대의 공간에서 미소 짓는 아둘람의 집 설립자 박보경 장로회신학대 선교학과 교수. 양평=신석현 포토그래퍼

아둘람의 집은 박 교수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의 아파트를 처분한 돈으로 마련했다. 이중직 목회자로 트럭을 운전하며 한인교회 목회를 했던 남편 장 목사가 어렵게 장만한 집이었다. 10명 남짓한 개척교회 성도 대부분 이민 사회 적응이 어려운 이들인지라 생계는 물론, 사역비 마련을 위해 노동과 목회를 병행하는 게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생업에 지친 몸을 이끌고 교회와 소외 이웃을 섬긴 장 목사였지만 규모 있는 교회에서 사역하는 동료를 보면 마음 한편에서 ‘나는 실패한 목회자인가’란 고민이 올라오곤 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박 교수는 남편을 이렇게 격려했다. “거친 삶의 현장에서 성도와 함께 울고 좌절하며 하나님의 신비를 살아내는 당신은 진짜 목회자다.”

남편만 이런 응원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학계와 교계에서 만난 신진 신학자와 개척교회·이중직 목회자에게도 같은 격려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2022년 출범한 것이 한국얌스펠로십(이사장 조재호·한국얌스)의 차세대 선교신학자 학술연구 지원금 프로그램 ‘아둘람 그랜트’다. 한국얌스는 세계선교신학회(IAMS)의 한국협력단체로, 박 교수는 현재 IAMS 회장이다. 이와 함께 한국얌스는 선교적 목회를 지원하는 ‘리커넥트’ 사역을 펼치며 다양한 형태로 활동하는 목회자를 지원한다.

아둘람의 집 역시 변방의 목회자와 신학자를 응원하는 ‘격려 사역’의 연장선상에서 출발했다. 박 교수는 “나 역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산 이방인이자 과부, 1남 2녀를 둔 여성 목사이자 사모로서 ‘변방의 정체성’을 가진 목회자이자 신학자”라며 “나처럼 주변성을 가진 이들을 이해하고 돌보면서 ‘환대의 신학’을 정립할 수 있었다”고 했다.

환대와 치유의 영성
지난달 20일 독대의 공간에서 열린 ‘아둘람의 집 오픈 기념 감사예배’ 모습. 양평=신석현 포토그래퍼

박 교수는 자신의 사명을 ‘환대’와 ‘치유’로 압축해 표현한다. 남편이 개척한 한인교회의 환대로 사별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던 게 계기가 됐다. 앞으로도 아둘람의 집과 아둘람 그랜트를 통해 변방 사역자의 내적 상처와 경제적 어려움 등을 돌보는 게 그의 목표다.

박 교수는 이 역할을 맡은 자신을 ‘주막집 주모’라 불렀다. 여독에 지친 여행자에게 쉴 곳과 음식을 제공하는 주막집 주모 역할이 곧 자신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아둘람의 집 기획서에서 공간과 자신의 역할을 이렇게 정의한다.

“아둘람의 집은 환대의 공간이자 재충전이 필요한 이들을 돕는 공간입니다. 여행자의 이야기에 주모의 이야기가 공명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주모는 이들에게 결핍과 아픔을 치유할 분을 안내하고 그분의 기적을 조용히 기다립니다. 기적과 환대를 경험한 여행자는 아둘람을 떠나 새 일꾼으로 자신의 길을 다시 걸어갈 것입니다.”

현재 박 교수는 영육간 치유 프로그램 도입과 인근 산책로 조성 등을 구상 중이다. 그는 “예배 처소와 숙소에 얼마간 머물 수 있도록 웬만한 세간은 갖췄으나 체험 프로그램은 아직 부족한 편”이라며 “여러 기독 기관과 교회와 협력해 지친 사역자를 격려하는 프로그램을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양평=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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