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가장 서늘한 여름을 보내며

국민일보

[태원준 칼럼] 가장 서늘한 여름을 보내며

입력 2023-08-04 04:20

지구촌 휩쓴 극한폭염 사태에
기후변화 학자들 오히려 놀라
예측이 너무 정확히 들어맞고
그 결과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관측사상 올여름 가장 덥지만
갈수록 더 더워질 일만 남아
“우리는 지금 남은 인생에서
가장 서늘한 여름 나고 있다”

그래도 희망 살려가려면
‘기후 적응’ 사회로
서둘러 전환해가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선 요즘 길을 가다 넘어지는 이들이 화상을 입는다고 한다. 최고 48도까지 치솟는 폭염에 보도블록과 아스팔트가 뜨겁게 달궈져 맨살이 닿으면 멍들 새도 없이 피부 조직이 상하는 것이다. 불과 몇 초 만에 2도 화상을 입고, 심하면 피부이식이 필요한 3도 화상으로 진행된다. 애리조나화상센터의 병실이 꽉 차 있는데, 3분의 1은 넘어진 사람들이다.

라스베이거스에선 청바지를 입고 정류장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이 엉덩이에 화상을 입었다. 교통사고 응급처치를 하느라 아스팔트에 무릎을 꿇은 구조대원은 무릎에 화상을 입었다. 노인, 장애인, 마약중독자 등 운신이 어려운 이들은 길에 쓰러지면 생명이 위험해지는 상황이다. 도시의 땅바닥을 흉기로 바꿔버린 날씨. 미국인은 지금 기후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화상은 인체를 향한 폭염의 공격 가운데 요란한 축에 든다. ‘침묵의 살인자’라 불리는 폭염의 실체를 유럽인은 지난해 경험했다. 48.8도의 사상 최고 기온이 기록된 지난여름 유럽 전역에서 폭염 사망자가 6만명이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직접적인 온열질환 사망은 나라마다 수백명 규모지만, 예년과 비교해 초과사망자를 추려보니 저렇게 많았다. 폭염은 어떤 기상재해보다 많은 인명을 소리 없이 앗아간다.

그래서 폭염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남유럽을 초토화한 7월의 폭염을 케르베로스라 부르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지옥문 지키는 머리 셋 달린 개의 이름을 따왔다. 태풍·허리케인·토네이도에 이름을 붙이고 등급을 매겨 대비하듯, 폭염도 그렇게 상대해야 할 재난이 됐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민간 기상매체가 시작한 일인데, 곧 닥칠 8월 폭염의 이름도 신화에서 가져다 지어 놨다. 카론, 죽은 이들을 실어 나르는 저승의 뱃사공.

이름을 이렇게 짓다간 신화 속 괴물이 남아나지 않을 거라는 농담 섞인 지적이 나올 만큼, 지금 북반구는 폭염에 성한 곳이 없다. 지난해 70일간 역대 최장 폭염을 겪었던 중국은 올여름 역대 최고 기온을 갈아치웠다(52.2도). 일본은 7월 마지막 주에만 1만명 넘는 온열질환자가 발생했고, 인도는 폭염이 너무 일찍 시작돼 지난봄부터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어제 강릉의 수은주가 38도를 가리킨 한국도 벌써 폭염 사망자가 작년의 세 배를 넘어섰다.

동시다발적인 지구촌 폭염 사태를 보면서 기후과학계는 세 가지에 놀랐다고 한다. ①자신들의 예측이 너무 정확히 들어맞아서 ②그 시기가 너무 빨리 닥쳐와서 ③막상 겪어보니 너무 충격적이어서. 더 충격적인 말은 나사의 기후과학자 피터 칼무스가 얼마 전 트위터에서 했다. “사람들이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우리는 지금 남은 인생에서 가장 서늘한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구의 평균 온도를 측정하는 미국해양대기청은 지난 5월을 관측사상 가장 더운 5월로 기록했다. 이어 6월은 가장 더운 6월, 7월은 가장 더운 7월이 됐다. 아마 8월도 이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올해를 기준으로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데, 기준점을 10년, 30년, 50년 뒤의 미래로 옮기면 “2023년 여름은 그래도 서늘했지” 하게 될 거라는 말이었다.

지구는 산업화 이전보다 1.2도 더워져 있다. 10년에 대략 0.1도씩 상승해왔다. 10년 전에는 아무도 안 쓰던 지구 열대화(boiling)란 말을 올해 유엔 사무총장이 꺼내 들었다. 인류의 목표는 상승폭을 1.5도에서 막는 것이니 0.3도가 남았다. 불과 0.1도에 온난화가 열대화로 바뀌었는데, 0.3도가 더 오르면 뭐라 부를지 모르겠지만, 1200가지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분석한 워싱턴포스트는 아무리 낙관적 변수를 넣어도 1.5도 상승은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시기의 우리는 분명 ‘서늘했던’ 2023년 여름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기후전도사 앨 고어가 2015년 파리협정 타결을 지켜보며 “이제 희망이 보인다”고 흥분해서 말했던 그 희망이 아직은 남아 있다고 한다. 세 가지가 거론된다. ①탄소제로 실현의 희미한 가능성 ②기후 대응 과학기술의 발전 가능성 ③인간의 탁월한 적응력. 정치와 과학이 각각 ①과 ②의 영역에서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며, 갈수록 뜨거워질 지구에서 사람들이 버틸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을 속히 바꿔가야 할 때다. 기후변화, 이제 대응 못지않게 ‘적응’이 시급해졌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