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인사이트] 묻지마 테러 속에 교회의 존재 이유를 생각한다

국민일보

[이명희의 인사이트] 묻지마 테러 속에 교회의 존재 이유를 생각한다

이명희 종교국장

입력 2023-08-08 04:07

불특정 다수 노린 흉기 난동
개인의 상대적 박탈감이
사회 향한 분노로 표출된 것

탐욕, 이기주의,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편협한 사회가
'외로운 늑대' 양산하고 있다

절망 속에서 헤매는 이들에게
교회가 희망이 되고
영적 안식처를 제공해야

살인적인 여름이다. 기상 관측 이래 올해 여름 온도가 역대 최고라는 기록이 쏟아진다. 스마트폰에선 폭염경보가 수시로 울린다. 살인적인 폭염으로 열사병 등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 수도 20명으로 최대를 기록했다고 한다.

기록적인 폭염 때문일까. 불쾌지수와 분노지수도 덩달아 오르는 것 같다. 일면식도 없는 행인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사상자를 낸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21일 신림역 ‘묻지마 살인사건’에 이어 지난 3일 분당 서현역 부근에서 인도로 차량을 돌진해 행인을 들이받고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흉기를 휘두른 사건이 발생해 1명의 사망자와 13명의 부상자를 냈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쇼핑몰에서 평온한 일상이 무참히 짓밟혔다. 총기 소지가 합법화된 미국에서만 테러가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국내에서도 무고한 시민에 대한 테러가 빈번해지면서 출퇴근길이, 밖으로 외출하는 평범한 날들이 위협받고 있다.

한탕주의가 판을 치고, 돈이 최우선 가치가 돼버린 현대사회에서 상대적 박탈감이 대중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으로 표출되고 있다. 과외 앱을 통해 처음 만난 20대 여성을 흉기로 무참히 살해한 정유정(24)은 검찰 조사에서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고 했다고 한다. 평소 사회적 유대가 전무했고, 고교를 졸업한 후 직장을 다닌 적도 없었다. 지난달 신림역 인근에서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20대 남성 1명을 숨지게 하고 3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구속된 조선(33)은 “내가 불행하게 살기 때문에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고, 비슷한 또래 남성들에게 열등감을 느껴 그랬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소년부 송치 전력이 14건에 전과 3범인 조씨는 어렸을 때부터 소년원을 들락거렸다. 서현역 사건의 범인 최원종(22)은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그는 특목고 진학에 실패한 뒤 일반고를 자퇴하고 가족과 떨어져 홀로 외톨이처럼 지내온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 사회에도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범죄가 만연하고 있다. 세상과 단절된 채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키워온 ‘외로운 늑대’들이 시한폭탄처럼 똬리를 틀고 공동체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사형제를 재개하거나 가석방 없는 종신형 제도 도입 등 묻지마 범죄에 대한 강력 대응을 촉구하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예방이 더 시급하다. ‘외로운 늑대’를 만든 것은 우리의 탐욕과 이기주의다. 끝없이 경쟁을 부추기고 더 높게 욕망의 바벨탑을 쌓으라는 무자비한 사회, 타인의 아픔이나 고통에는 무관심한 사회, 이를 투영하고 부채질하는 미디어가 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는지도 모른다. 살아오면서 누군가 한 번이라도 그들의 손을 잡아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전 세계 25개국에 번역 출간돼 100만부 이상이 팔린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란 책은 10년 넘게 기분부전장애(경도 우울증)와 불안장애를 앓은 작가가 정신과 의사와 상담한 기록을 담았다. 이 책이 이렇게 인기를 끈 것은 정서적 고립지대에서 외로움과 우울증을 느끼는 이들이 늘어나는 사회적 현상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작가는 “문제는 낮은 자존감”이라며 “행복과 불행의 공존처럼 삶의 곡선은 유동적이다.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 커다란 어둠 속을 걷고 또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한 조각의 햇살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세상을 살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우울감을 겪는다. 삶의 매 순간이 희열이고 행복이 아니라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암흑과 절망의 긴 터널 끝에는 한 줄기 빛이 있다는 믿음, 그리고 타인과 끊임없는 비교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것, 내리쬐는 한 줄기 햇살에 감사할 수 있다면 고통도 견디기가 한결 수월해질 터다.

‘교회가 이 땅의 소망입니다.’ ‘교회가 희망입니다.’ 교회에 걸려 있는 현수막들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려다 십자가 불빛을 보고 찾아들어가 마음을 돌려먹거나 교도소에서 예수를 영접하고 새 삶을 살아가는 재소자들의 간증도 많이 있다. 교회가 다시 희망이 돼야 한다. 약자를 돌보고 흑암 속에 있는 이들에게 생명의 손길을 내밀고 영적 안식처를 제공해야 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 28)

이명희 종교국장 mheel@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