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오송 참사 40일, 비극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국민일보

[한승주 칼럼] 오송 참사 40일, 비극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입력 2023-08-23 04:20

오송 지하도 참사 ‘관재’인데
모든 기관 책임 회피에 급급
불안한 시민, 각자도생 우려

중대시민재해 첫 적용될까
해당요건 갖춰진 것으로 보여
충북도지사·청주시장 책임 커

그간 대형 사고 윗선 처벌이나
스스로 물러난 적 거의 없어
이번엔 달라져야 한다

어두컴컴한 지하차도 안으로 순식간에 물이 차오른다. 창문과 선루프를 통해 가까스로 차량 밖으로 빠져나온 사람들이 지하차도 벽을 잡고 힘겹게 탈출을 시도한다. 한 시민이 차량 위로 올라 119에 다급히 구조요청을 한다. 하지만 터널 속이라 통신은 원활하지 않고, 생사가 오가는 긴박한 상황에서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간다. 턱밑까지 차올랐던 물은 어느새 천장까지 닿았고, 영상 속 시민 일부는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다. 지난주 오송 참사 한 달을 맞아 생존자협의회가 추가로 공개한 영상이다. 사고가 발생한 7월 15일 오전 8시32분부터 8시51분까지 충청북도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 있던 차량 4대에 찍힌 블랙박스 영상을 편집한 것이다.

생존자들이 떠올리기 싫었을 공포의 순간을 공개한 것은 한 달이 넘도록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그날 그곳에서 아무 잘못이 없던 14명이 숨졌다. 폭우가 쏟아지고 제방이 무너졌어도 지하차도 통제만 됐으면 살았을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충북도와 청주시, 경찰과 소방, 제방 공사를 맡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 우리가 ‘정부’라 통칭하는 5개 기관 모두 책임 회피에만 급급하고 있다.

사고 전날 오후 5시21분 119 종합상황실 벨이 울렸다. 미호강 제방을 지나던 한 시민이 “거기 허물어지면 오송 일대가 물난리가 날 것 같다”며 출동을 요청했다. 그러나 119 측은 “인력이 없다”며 “구청이나 이런 데 전화해 보라”고 끊었다. 어처구니없는 대응이다. 최소한 다른 기관에 협조 요청이라도 했어야 했다. 국민은 어디서 제방을 관리하고, 누가 교통통제를 관할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알 필요도 없다. 관공서에 위험을 알렸으니 그 안에서 위기관리가 되는 게 마땅하다. 그게 시스템이고 매뉴얼일 것이다.

사고 당일. 침수 1시간여 전부터 충북도, 청주시, 행복청과 112·119에 여러 차례 신고가 접수됐다. 하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심지어 지하차도 통제 권한이 있는 충북도 간부는 그게 본인 업무인지도 몰랐다니 한심하고 분통 터질 노릇이다. 선행적 요인도 있었다. 행복청은 지하차도 인근 미호강에서 도로 확장공사를 하면서 미호천교 아래 제방을 무단 철거하고 임시 제방을 부실하게 쌓아 사고 원인을 제공했다. 이번 참사는 제방 관리 결함과 지하차도 통제 실패로 발생했다. 폭우라는 자연재해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잘못한 인재이며 정확히는 공무원이 제 할 일을 하지 않아 생긴 ‘관재’였다. 한 기관만 제대로 역할을 했어도 피할 수 있었던 사고였다. 시민들은 불안하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번지는 이유다.

검찰 수사의 관심은 이번 사건이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중대시민재해’ 혐의가 최초로 적용될지 여부다. 중대시민재해는 공중이용시설의 설계·제조·설치·관리상 결함으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재해다. 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시행령에 따르면 터널 구간 연장 100m 이상인 지하차도(궁평2지하차도는 430m)와 국가하천(미호강)은 공중이용시설에 해당한다. 지하차도의 관리 책임은 충북도, 미호강은 청주시에 있다. 책임자는 충북 도지사와 청주시장이다. 관건은 관리상 결함이 인정되는지다. 강이 범람하면 지하차도에 바로 물이 들어찬다. 홍수경보가 발령된 시점에서 충북도는 지하차도를 폐쇄하거나 통행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긴급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부분은 관리상 결함으로 봐야 한다. 오송 참사는 중대시민재해 요건을 갖췄다.

국무조정실은 감찰을 통해 공무원 36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그동안 대형 사고에서 고위직이 처벌받은 적은 거의 없다. 그들이 스스로 책임지고 물러나는 모습도 거의 보지 못했다. 이번에도 하위 직급 몇 명의 꼬리 자르기로 마무리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국무총리가 해임을 건의했던 행복청장만 어제 교체됐다. 생존자협의회는 김영환 충북지사와 이범석 청주시장, 이상래 전 행복청장 등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오송 참사 40일, 철저한 원인 규명과 진상조사로 하루빨리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중요한 순간 국가 재난대응체계가 먹통이 되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비극을 경험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국가는 없었다. 더 이상 그런 일을 보고 싶지 않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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