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여론을 설득하거나 야당과 타협하거나

국민일보

[여의춘추] 여론을 설득하거나 야당과 타협하거나

남도영 논설위원

입력 2023-08-25 04:07

찬반 엇갈리는 현안과 정책은
사실상 추진 불가능해진 상태

이념 투쟁과 우호적 언론 환경
조성으로 위기 극복하려 하나
지지층 강화에는 효과 있어도
확장성과 실효성에는 회의적

MB, 집권 1년 반 만에 지지율
폭락하자 중도실용으로 선회

윤 대통령도 변화 불가피한데
여권 내부에는 위기감도 없고
위기를 말하는 사람도 없어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한 장관은 “요즘은 국민 80~90%가 동의하는 정책이라야 추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여야 간 대립이 극심해 찬반이 엇갈리는 정책은 추진하기 어렵다는 말이었다. 과반의석을 보유한 더불어민주당이 발목을 잡으면 정책 추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민 80~90%가 찬성하는 정책이 없지는 않다. 지난주 여야는 수해 복구와 피해 지원을 위한 관련 법안 12개를 처리하기로 합의했는데, 수해 복구는 여야 모두 반대하기 힘든 사안이다. 추락한 교사들의 교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 흉악범죄를 막기 위해 제도를 정비하는 법안도 국민 80~90%의 동의가 가능한 사안일 것이다.

하지만 웬만한 현안들은 찬반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 친윤계 핵심 장제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우주항공청 특별법을 통과시켜주면 위원장직을 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쳤지만, 민주당은 “쇼를 하는가”라며 일축해버렸다. 이견이 없을 것 같은 우주항공청 설립도 국회에서 막힌 셈이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다른 현안은 말할 필요도 없다.

역대 대통령의 국정 운영 평균 지지율은 30~50%대였다. 임기 초반 70~80%대를 기록하기도 하나, 임기 중반을 넘어서면 지지율이 떨어지고 임기 말에는 20~30%, 심지어 10%대를 기록한다. 대통령 지지율이 70~80%대면 국정 운영에 걸림돌이 별로 없다. 문제는 국정 운영 지지율이 30~40%대일 경우다. 이런 수치는 국민 절반 이상이 대통령 국정 운영에 부정적이라는 의미다. 국정 운영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민 여론을 설득하거나 야당과 타협할 수밖에 없다. 다른 특별한 방법은 없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 중후반이다. 윤 대통령은 야당과 타협하는 방안을 포기한 상태다. 야당과의 타협이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과거 대통령들도 야당과의 타협에 인색했다.

남은 것은 여론 설득을 통한 지지율 제고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잃어버린 10년’을 앞세우며 보수색 강한 정책들을 추진했다. 하지만 고소영·강부자 내각 논란, 광우병 촛불 시위, 글로벌 금융 위기, 용산 재개발 현장 진압 참사,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와 사망 등으로 지지율이 폭락했다. 이 전 대통령은 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어려워지자 2009년 하반기 ‘친서민 중도실용’을 천명하며 노선을 선회했다. 중도 성향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국무총리로 기용하고, 친박계와 화해에 나섰다. 대운하 추진 포기를 선언하고, 재산 기부 방안을 발표하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여러 의혹이 불거진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를 포기했다. 당시 친서민 중도실용 노선의 진정성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내용 없는 이미지 변신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어쨌든 이 전 대통령은 40%대 지지율을 회복했다.

야당과의 타협을 선택지에서 배제한 윤석열정부도 여론 설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두 가지 정도로 보인다. 첫 번째는 이념 대결, 두 번째는 ‘우호적인 언론 환경 조성’이다.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다. 윤 대통령은 ‘공산전체주의 세력’과의 투쟁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런 설득이 먹히는 것은 윤 대통령 기존 지지층뿐이다. 확장성이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중도층이 등을 돌리게 만드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여권은 ‘방송 정상화’라고 부르고, 야권은 ‘방송 장악’이라고 부르는 언론 환경 변화 정책도 쉽지 않은 길이다.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사상과 이념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현장이다. 사람 몇 명을 바꾼다고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현재 상황이 지속되면 위기가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해결되지 않은 갈등들이 누적되다 임계점을 넘을 수 있고, 정책 추진은 갈수록 힘들어질 것이다. 이미 ‘차관 정치’ ‘시행령 통치’ 등 기형적인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거나 ‘전 정권 때 너무 많이 망가졌다’는 식의 변명도 약효가 다했다. ‘도대체 대통령과 정부는 뭘 하고 있는가’라는 말이 나오게 되고, 누적된 불만은 선거를 통해 표출되기 마련이다. 집권 여당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명박정부가 노선 변화를 선택한 시점이 정권 출범 1년 반 정도 시점이었다. 윤석열정부도 안정적인 국정 운영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텐데, 여권에는 위기감이 없고 위기를 말하는 사람도 없다.

남도영 논설위원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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