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 가계대출 급증, 정부 책임 크다

국민일보

[박정태 칼럼] 가계대출 급증, 정부 책임 크다

입력 2023-08-29 04:20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의 뇌관
금리 인상에 감소세 보였다가
4월부터 급속히 늘어… 집값
바닥론에 주담대 폭발적 증가

각종 부동산 규제 풀어준 탓
소득 상관없이 5억 대출 가능한
특례보금자리론이 불씨 키워
젊은 층의 ‘영끌 매수’ 재현돼

당국은 책임 회피하며 오히려
은행 50년 만기 주담대에 화살
규제 완화의 부작용 돌아보고
정책 선회나 속도 조절할 시점

가계대출이 급증세다. 심상치 않다.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의 잠재적 뇌관이라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가계대출은 한국은행의 잇단 기준금리 인상 영향으로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감소세를 보였다. 그러다 4월부터 증가세로 전환되더니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가계대출 가운데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다. 주담대 잔액은 2분기 말 1031조원으로 1분기 말에 비해 14조원 이상 늘었다. 사상 최대 기록이다. 1분기(4조5000억원)의 3배를 웃돈 증가폭도 걱정스럽다.

주담대가 급증하는 건 부동산시장이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그간 부동산시장은 냉각기를 맞아 거래량이 급감하는 등 침체 국면에 빠져 있었다. 경기도 좋지 않았다. 이에 현 정부는 부동산시장 경착륙을 막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풀어줬다. 대출 규제 완화, 부동산 관련 세금 인하, 부동산 규제 지역 해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 해제 등이 그것이다. 금융 당국은 은행권에 금리 인하 압박까지 가했다. 이런 선물 보따리를 받은 부동산시장이 꿈틀댈 것은 당연지사다. 지난주 서울 아파트값이 14주 연속 오른 것은 물론 지방 아파트 가격도 68주 만에 상승세로 돌아선 걸 보면 집값 바닥론에 힘이 실리는 모양이다.

박근혜정부 시절의 ‘초이노믹스’(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제정책)처럼 윤석열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빚내서 집 사라’ 기조인 듯하다. 정부가 온갖 규제 완화로 집값을 떠받치고 있을 테니 각종 대출을 받아 당장 집을 사라는 시그널을 계속 주고 있다. 이러니 젊은 층의 ‘영끌 매수’가 재현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상반기 전국 아파트 매입 건수의 31.3%를 30대 이하가 차지할 정도로 젊은 층의 주택 매수세가 거세다. 젊은 층이 다시 매수 행렬에 나서게 된 배경은 뭘까. 집값이 바닥을 쳤다는 인식이 확산된 데다 예전보다 자금 조달이 한결 쉬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올 1월 출시된 특례보금자리론이 그 불씨를 되살리고 더 키웠다고 봐야 한다.

주택금융공사의 정책 모기지인 특례보금자리론은 소득과 상관없이 집값 9억원 이하이면 연 4%대의 저금리(고정)로 최대 5억원을 대출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무주택자 또는 1주택자(기존 주택 처분 조건)가 이용할 수 있는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만기는 최장 50년(만 34세 이하)이다. 이 때문에 집값 요건만 갖춘다면 고소득층이라도 서울 지역 아파트를 사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 파격적으로 혜택이 많은 상품인 만큼 20·30대라면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1년 한시적 상품이라 연내에 잡지 않으면 안 된다. 특례보금자리론이 선풍적 인기를 끈 이유다. 7월 말까지 신규 대출액이 무려 31조원을 넘었으니 말이다. 이 중 대환대출 등을 제외한 신규 주택 구입 용도만 해도 전체의 59%인 18조원을 상회한다. 감소세에 들어갔던 가계대출을 4월부터 반등시켜 급증 추세로 만들어버린 주범이 바로 특례보금자리론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금융 당국은 “부채가 늘어난 건 맞지만 그것도 안 한다면 젊은 분들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변명하며 가계대출 급증을 야기한 데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한다. 되레 시중은행들이 취약차주 보호라는 정부 기조에 맞춰 지난달부터 본격 출시한 50년 만기 주담대가 주범인 양 ‘DSR 규제 우회 수단’으로 지목하고 가계대출 현황 긴급 점검에 착수하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물론 50년 만기 주담대가 가계대출 증가에 일조한 것은 맞다. 5대 시중은행의 50년 만기 주담대가 이달 들어 2조원 넘게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50년 만기’라는 상품 구조가 근본 원인일 수는 없다. 은행권은 정부 압력에 50년 만기 주담대 판매를 중단하거나 연령 제한을 두기로 했지만 당국의 갈지자 행보에 불만이 가득한 모습이다.

진단이 정확해야 옳은 처방을 내릴 수 있다. 정부가 책임을 애먼 곳에 떠넘겨선 안 된다. 이미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들이 가계부채 증가세에 대해 ‘금융 불균형’ 확대를 우려하며 강력한 경고를 하고 나선 마당이다. 정부는 솔직해져야 한다. 각종 부동산 규제 완화가 초래한 부작용을 돌아보고 그간의 정책 기조를 선회하거나 속도 조절을 해야 할 시점이다. 지금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경제 현안이 가계부채 연착륙임을 직시해야 한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jtpark@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