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쪽지] 산다는 것은

국민일보

[철학 쪽지] 산다는 것은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

입력 2023-09-16 04:05

인문학 강의를 많이 다니는 입장에서 처하게 되는 딜레마가 있다. 기본적으로 인문학은 생각을 깊이 하자고 권유하는 학문인데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오는 수강생은 이미 생각을 많이 하는 분들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반성을 그만하고 자신의 경계를 좀 더 지키는 것이 더 적절한 경우에도 자기가 뭘 고치면 이 상황이 개선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경우를 본다.

누구나 자신의 경향성을 이기지 못한다. 반성을 하는 분들은 계속 반성을 하고, 생각을 안 하는 사람들은 옆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떠넘기며 자신의 마음의 짐을 덜어낸다. 그런데 또 문제를 해결하자면 결국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도리밖에 없다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이쯤에서 읽는 분이나 쓰는 나나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어쩌겠습니까… 그들과 이미 관계가 얽혀져 버린 것을요… 그들은 알아서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조금이나마 변하게 하는 방법을 또 우리가 고민해야 합니다”라고 말씀드리게 된다.

누군가와의 관계에 내가 얼마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어떻게든 그 사람을 이해해서 그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이쯤에서는 관계를 정리하고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중단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기준선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가 문제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나의 우물을 확장시킨다. 내 좁은 우물로 이해되는 사람과만 관계하겠다고 하면 내 세상은 너무나 좁아질 것이다. 그렇다고 그 사람을 이해하려다가 내 우물이 깨져버리는 것도 안 될 일이다. 나 자신을 유지할 수 없게 하는 관계는 포기해야 한다. 그런데 또 내가 성장하려면 내 우물이 깨져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도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나의 우물이 깨지는 것이 성장을 위한 깨짐인지 파괴되는 과정의 깨짐인지에 대한 판단은 나만 할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깨짐을 ‘성장을 위한 깨짐’으로 만들지 ‘파괴되는 과정의 깨짐’으로 둘지도 나의 의지에 따른 것일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나 자신을 파괴하는 수준의 깨짐이 아니라면 ‘최대한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래야 나중에라도 후회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해하려는 생각 속에서 최선을 다해 나의 우물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한다. 노력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더 이상 노력해서는 안 된다’는 신호가 온다. 그 신호가 오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 나의 우물을 확장하려 노력한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지금의 나의 노력은 나의 우물을 확장하려는 노력이지 상대방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하면 생색이 나서 관계가 어려워진다. 어느 정도까지 노력할 것인가는 그와의 관계를 내가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가와 관련된다. 결국 나의 결정이다. 그리하여 철학을 30년 한 내게, 산다는 것은 자신의 한계와 타인의 한계를 감당한다는 것이다.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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