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수 칼럼] 중도층 파이팅!

국민일보

[신종수 칼럼] 중도층 파이팅!

입력 2023-09-12 04:20

대화와 타협 내팽개친 여야 극한 대결로 중도층 역대 최대
진영싸움 벗어나 사안별로 옳고 그름 따지는 중도층 중요
‘수박’이든 ‘내부총질러’든 합리·중도 후보 많이 당선돼야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중도층이 역대 최대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30% 넘게 나온다. 여야가 대화와 타협은 시도하지 않고 내전에 가까운 정쟁을 벌이고 있는 데 대해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다. 여야가 지지층만 바라보며 집토끼 단속에 나선 정치 현실을 반영한다. 지금 여야에 대화와 타협, 상생을 촉구하는 것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전쟁을 중단하고 평화롭게 지내라고 외치는 것만큼 공허하다. 여야는 이미 협치를 포기한 지 오래다. 대통령은 야당을 공산전체주의, 반국가세력이라고 공격하고 야당 대표는 갑작스러운 단식과 대통령 탄핵으로 맞서며 각자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고 있다.

일반 국민들이 욕을 하든 말든 지지층 중심으로 내년 총선을 치르려는 전략인 듯하다. 선거는 절대평가가 아니라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자기 당 지지율이 낮아도 상대 당이 더 낮으면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 정쟁에 올인하는 모습이다. 각자 지지층만 바라보고 강 대 강으로 부딪치는 암울한 정치 현실을 당분간 볼 수밖에 없게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나마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구석이 있다. 바로 중도층이다. 중도층이 많다는 것은 정치가 엉망이라는 얘기인 동시에 정치를 바꿀 잠재력도 그만큼 크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중도층은 누구인가. 정치 양극화를 거부하는 유권자들이다. 정치 팬덤들과는 거리가 먼 침묵하는 다수다. 공격적이고 극성스러운 팬덤과 달리 침착하게 행동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중도는 진보와 보수 사이의 어정쩡한 중간이 아니다.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사안별로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답이 보이지 않는 애매한 상황에서는 참을성 있게 상황을 지켜보며 고민한다. 조직화돼 있지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투표하고 행동한다. 캐스팅보트 또는 위대한 균형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도층은 수시로 양 진영으로부터 기회주의자 또는 회색분자라고 욕을 먹는다. 하지만 이 세상이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이뤄져 있는가. 회색을 비롯해 다양한 중간색들 천지인 총천연색의 세상이다. 흑백이 아닌 총천연색과 같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조정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가는 것은 기회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다.

중도층이 양 진영으로부터 욕을 먹는 것처럼 합리적이고 중도적인 성향의 정치인들도 당내에서 ‘내부총질’ 또는 ‘수박’이라고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을 보라. 강성 지지층들과 이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진영 싸움의 선봉에 서 있다. 친윤과 친명이 격돌한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이 본질인데 서로 대화는커녕 우연히 마주치는 것조차 꺼린다. 서로 자신들을 선, 상대를 악으로 규정한다. 각 당 내부적으로는 단합을 강요하며 다양한 목소리를 용인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합이 아니라 획일이고 전체주의다.

우리 정치에서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각 당이 각자 똘똘 뭉치는 것이 아니다. 그래봤자 싸움만 더 한다. 각 당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합리적인 토론과 절충이 이뤄져야 한다. 각 당의 이런 모습이 여야 간 대화로 확산돼 나라의 미래를 놓고 지혜를 모으고 타협해야 한다. 이는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하는 데서, 상대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런 점에서 ‘내부총질러’나 수박은 배신자가 아니라 위대한 이견자다.

중도층의 할 일은 명확하다. 내년 총선에서 내부총질러나 수박같은 중도적인 성향의 후보에게 표를 주는 것이다. 여야 간 진영 싸움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토론과 설득, 조정을 할 수 있는 후보가 누구인지 눈여겨 봐야 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이런 사람들이 많이 당선돼야 우리 정치가 변한다. 지금 여야는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하면서 상대 당을 더 나쁜 당으로 만들면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누가 누가 잘하나 총선이 아니라 상대를 깎아 내리는 누가 누가 못하나 총선이다. 북한의 핵 위협과 경제·사회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정쟁을 해서라도 원내 1당이 되고, 배지만 달려는 생각인 듯하다. 마치 늑대를 만난 두 사람이 힘을 합해 늑대를 물리칠 생각을 하지 않고 다른 한 사람보다 빨리 뛰기만 하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강성 지지층은 누구에게 투표할지 뻔하다. 중도층만이라도 꼭 중도적이고 합리적인 후보에게 투표하기 바란다.

신종수 편집인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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