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얼라이브] 현지인 자원 활용 의료팀 ‘툴’ 만들어 땅 끝까지 복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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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얼라이브] 현지인 자원 활용 의료팀 ‘툴’ 만들어 땅 끝까지 복음 전한다

제이큐어선교회 대표 목사 김현주 원장

입력 2023-09-1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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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연세비뇨의학과의원 김현주 원장이 지난 12일 경기도 성남 병원 원장실 옆 제이큐어선교회 사무실에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의료선교사로서의 사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9세기 초 영국 스코틀랜드의 한 시골 교회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아프리카 의료선교를 위한 집회 도중 특별 헌금 순서 시간이었다. 헌금 주머니가 한 소년 앞에 오자 그는 몸을 떨면서 헌금 주머니를 손으로 잡은 채 큰 소리로 외쳤다. “제게는 바칠 돈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대신 제 몸을 바쳐 주님을 위해 살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면화공장에서 일하며 틈틈이 공부해 글래스고대학에서 신학과 의학을 공부하고 의료선교사로 아프리카에 파견돼 중·남부를 탐험하며 원주민들에게 사랑과 의술을 베풀었다. 데이비드 리빙스턴(1813~1873) 이야기다.

경기도 성남 분당연세비뇨의학과의원 김현주(62) 원장도 리빙스턴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일까. 김 원장의 가문은 조선시대 인조(仁祖) 때 영종도 땅을 하사받았고 그 땅에서 터전을 이뤘다. 김 원장의 증조부는 3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장티푸스로 두 아들을 잃고 큰 슬픔에 빠졌다. 그 충격적인 삶에 새로운 희망을 심어준 것이 바로 복음이었다. 믿음의 대를 이은 김 원장의 조부는 교회를 세우고 목회자가 없는 지역을 순회하며 전도 활동을 펼쳤다.

이런 집안 전통을 보고 자란 김 원장의 부친 또한 평생 교회에 헌신하며 하나님만 바라보는 삶을 살았다. 신앙 대물림은 4대째 결실을 보았다. 연세대에서 의학을 공부한 후 감리교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해 목사 안수를 받고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는 김 원장뿐만 아니라 그의 형 역시 2001년 목사 안수를 받고 베트남과 캄보디아 선교사로 파송돼 사역하고 있다.

지난 12일 병원에서 김 원장을 만났다. 자신을 ‘복음에 빚진 자’라고 소개한 김 원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은혜”를 받았다고 했다. “대학 입학원서를 쓸 때 신학과 의학과 사관학교 중에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하고 기도했습니다. 사관학교에 합격까지 했는데, 먼저 의학을 공부하라는 마음을 주셔서 연세대에 진학했습니다. 당시 면접관 교수님이 왜 왔냐고 물었는데 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김 원장은 이후 신학을 공부하고 졸업하는 과정에서 주마등처럼 깨닫게 된 것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김 원장의 가문이 우리나라 감리교 첫 선교사인 아펜젤러를 통해 첫 복음을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다녔던 고등학교도 평양에 선교사가 세운 학교의 후손이 남쪽으로 내려와 세운 경기도 안양 신성고등학교였다. 묘한 인연이지만 연세대도 선교사들이 설립한 학교였다.

현지인 중심의 의료선교를 위해

목사로서의 사역과 의사로서의 선교 사역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처음엔 ‘어떻게 현지를 지원할까’를 생각했다면, 언제부턴가는 ‘어떻게 하면 이미 현지에 세워진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그는 앞서 분당차병원 재직 시절 비뇨의학과 전문의로 성공적인 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마음은 늘 허전했다. 의료선교의 사명을 제대로 실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2005년 기독교대한감리회 중앙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난 후부터 고민은 더욱 커졌다.

해외에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재해가 발생하면 차병원과 의료 지원도 나가고, 불꽃교회에서 의료선교도 다녀오면서 시간적, 재정적으로 김 원장이 주도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 병원을 개업한 것도 이 때문이다. ‘병원은 언제든 정리하고 선교지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2017년 12월 24일, 하나님은 선교에 대한 그의 마음을 정하게 하셨다. 첫째는 여러 곳에서 후원받는 것이 아닌 ‘자립’을 목표로 삼았다. 남에게 손 벌리기 어려운 성격이라 자립하는 게 제일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둘째는 ‘선교본부’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동안 오래 교제했던 목회자들과 선교 비전을 나누었고, 그렇게 제이큐어(JCure)선교회를 발족했다. 의료선교를 통해 현지 교회를 부흥시킬 방안을 찾는 것을 제이큐어선교회의 비전으로 정하고 현지 성도들이 선교사들과 동역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래서인지 하나님은 김 원장에게 다른 방향으로 비전을 주셨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의료선교를 통해 현지를 복음화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하는 고민이었다. 현지 보건 시스템 보조, 진단, 약품 보급 등 의사들의 단발성 의료선교 활동이 필요한 곳도 있지만 ‘의사들이 직접 선교사로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현지 교회가 (의료선교의 혜택을) 받는 입장이 아니라 사역의 주체가 되는 현지인 성도 중심의 보건의료팀을 구성하자’는 전략을 마련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현지인, 현지 목회자들에게 협력의 툴(tool)로 다가가자’는 구체적인 사명으로 연결됐다. 현지에 의과대학이나 병원을 설립하는 것도 좋지만, 그 방법은 이미 서구교회에서 시도했다가 실패한 것이었다. 고비용 저효율로 현지 자립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원장은 생각을 바꿨다. 한국교회가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여 이후 자립한 것처럼 현지 교회나 현지인의 재능을 살려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식으로 말이다.

재정에서 재능으로 선교 툴 전환
제이큐어선교회 대표목사이기도 한 김현주 원장이 지난 2010년 2월 아이티 지진 피해 현장 천막촌에서 긴급구조 의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제이큐어선교회 제공

김 원장이 밝힌 ‘툴’ 의료선교는 어떤 것일까. ‘툴’이라는 것은 ‘어떤 일이 되게 하는 도구’이다. 선교적 툴은 현지 교회의 자원을 활용한 보건 의료팀을 구성하는 것이다. 먼저 선교지에서 활동하는 선교사와 현지인 목회자가 지역 주민을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현지 보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9년 1월 ‘사람은 케어(care)하지만 하나님은 큐어하신다’라는 목표 아래 의기투합해 ‘선교지 교회 부흥을 가져오는 의료선교’라는 비전을 수립했다. 현지 교회의 성도들로 구성된 ‘자체 보건의료팀’을 만들고 만약 의료인이 부족한 경우에는 간호조무사 등 그 나라 보건 의료시스템에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증 취득을 돕는 프로그램을 세웠다. 이런 의료선교의 툴을 활용해 교회가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전략을 세웠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재정’을 바탕으로 선교를 해왔지요. 그러나 이제는 ‘재능’이 바탕이 된 선교로 전환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돈이 아니라 그런 자원을 보게 하셨습니다. 우리 선교회가 선교적 플랫폼이 되면 다양한 전문인 사역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김 원장은 한국교회의 목회자가 현지 교회 목회자를 일대일로 매칭해 목회적 멘토링, 코칭을 통해 그 역량을 키워준다면, 훈련받은 현지 목회자들을 통해 그 지역과 나라가 복음화되는 것을 바라볼 수 있다는 얘기다. 보건과 구제를 넘어 현지 교회가 삶의 한복판으로 파고 들어갈 수 있도록 툴을 주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김 원장은 몽골에서는 교회 모델이, 캄보디아에서는 학교 모델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교육선교의 일환으로 선교사가 세운 학교들은 한국 의료진과 연결되는 양질의 보건실을 운영하는 것과 더불어, 학부모교육 영어 태권도 등 특화된 집중 코스를 만들어 학교의 질을 높여나가고 있다고 했다.

김 원장은 어린 시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서원했고 삶 자체를 하나님께서 역동적으로 이끌어오셨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신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심이 증거되고 많은 사람이 도전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향한 계획이 있기에 결국 우리 자신이 ‘나의 하나님을 만났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옛날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누워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했던 것처럼 말이다.

현재 제이큐어선교회는 아직 규모가 크진 않지만 꾸준히 사역을 확장하고 있다. 장로교와 감리교를 합해 이사 14명, 운영위원 7명과 함께하고 있고 그중엔 목사, 원장 등 전문인도 포함돼 있다. 병원은 구조상 조그만 골방이지만 열방을 위한 기도처이자 사랑방이기도 하다. 한 달에 한 번씩 선교회 운영위원회로 모인다. 아직은 베이스캠프로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몽골과 태국 등 사역을 위해서도 계속 준비 중이다. 선교지 현장에서 단 하나의 교회라도 성장하면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라는 비전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김 원장은 왜 청진기를 들고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된 것일까. 그의 대답이다. “누가복음 24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증언을 하고 증인이 돼라’고 말씀하셨어요. 저희 선대에서 아펜젤러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였고 그 복음이 저에게까지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주는 기쁨이 받는 기쁨보다 더 큰 거잖아요. 누군가 주님 명령을 따라 목숨을 건 증인의 사명을 감당했기에 복음이 오늘 나에게,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을 완수할 주님의 증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글·사진 윤중식 종교기획위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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