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영 기자의 안녕, 나사로] 분노의 ‘마스크’ 벗고 용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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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 기자의 안녕, 나사로] 분노의 ‘마스크’ 벗고 용서를…

드라마 ‘마스크걸’을 보고

입력 2023-09-16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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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가 용서와 닿을 때 냉기는 온기를 만난다. 분노의 마스크를 벗을 용기가 관계를 회복시키고 세상을 보다 따뜻하게 만드는 바탕이 된다. 넷플릭스 ‘마스크걸’ 캡처

빼어난 미모를 갖추지 못해 가수의 꿈을 포기해야 했던 모미(이한별 나나 고현정 분)는 외모콤플렉스를 가린 채 자신의 꿈을 이룰 도구를 찾는다. 도구는 두 가지, 마스크와 인터넷 방송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마스크걸’은 얼굴을 가린 채 ‘마스크걸’이란 이름으로 인터넷 방송 BJ(인터넷 방송인)로 활동하다 끔찍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다.

주요 등장 인물들에겐 교집합이 있다. 외모 탓에 차별당한 설움과 이를 해소하기 위한 비뚤어진 욕망이 혼재된 삶을 살아간다는 점이다. 드라마는 외모지상주의 사회 속에서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이들의 충격적이고 이중적인 실상을 보여주며 이목을 끈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의 시작은 극의 흐름에 ‘모성애’가 ‘복수’와 결합하면서부터다. 공교롭게도 이 두 가지 키워드에 기독교 신앙이 깔리면서 작품은 ‘수리남’ ‘D.P. 시즌2’에서 보여준 ‘권력화된 기독교 빌런’ 대신 ‘일상화된 기독교 빌런’을 그려낸다.

남편과 이혼 후 억척스럽게 삶을 지탱해 온 경자(엄혜란 분)에게 외아들 주오남(안재홍 분)은 인생의 전부다. 그런 아들의 죽음 앞에서 교회 집사인 엄마의 모성애는 잘못된 방향으로 폭주한다. 자식을 위한 숭고한 헌신은 가해자를 향한 천박한 복수심으로 변질한다. 가해자를 추적해 죽이는 일에 자신의 전부를 쏟아붓는 경자의 모습은 지극히 맹목적이고 폭력적으로 묘사된다.

심지어 복수를 위해 불법으로 무기를 구입하고 가해자의 자녀를 오랜 기간 가스라이팅하는 등 치밀한 복수 계획을 이행하는 동안 그 모든 과정을 ‘하나님의 뜻’이라 되뇌며 정당화한다. 기독교의 본질과 동떨어진 자기 신념과 그릇된 믿음의 끝은 결국 파멸로 종결된다.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어려움 중 하나는 가치관을 세우는 것이다. 그중 ‘용서’는 난이도 최상급에 해당하는 난제다. 부모 스스로도 안 되는 용서를 자녀에게 가르칠 수가 없다. 놀이터에서 놀다 또래 친구에게 한 대 맞고 들어온 아이에게 다짜고짜 “넌 왜 두 대 못 때렸냐”고 다그치는 모습이 그저 우스개로 들리지 않는 게 우리네 육아 현실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프레드 러스킨 박사의 저서 ‘용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용서란 나를 상처 입힌 사람의 행위를 그저 참고 견디는 게 아니라 과거를 자유롭게 흘러가도록 놓아주고 현재를 치유하기 위해 내가 내린 선택이다.” 용서의 고대 그리스어 ‘아피에미’가 품고 있는 뜻이 ‘떠나보내다’라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진정한 용서는 누군가의 잘못된 행동이나 부당한 일을 두고 괜찮은 것으로 받아들이며 슬쩍 눈감아주는 게 아니다. 그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거나 잊은 채 살아가라는 권면도 아니다. 자신에게 들이닥친 분노와 불편한 감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그렇게 탈출구를 찾았을 때 비로소 관계가 회복되고 구겨졌던 감정의 종잇장을 매만지며 펴볼 기회를 얻는다.

드라마 속 경자처럼 자식을 잃은 상황까진 아니더라도 부모로서 용서를 결단해야 할 고민의 순간은 일상적으로 다가온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대의 ‘육아 전쟁터’에선 부모와 자녀들이 ‘용서의 마지노선’에 놓이기 일쑤다. 반찬 투정, 학교생활, 공부를 향한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간극 등이 전장이 된다. 용서가 이뤄진다면 새로 눈뜨는 하루에 ‘희망적’이란 수식이 달리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반대어가 성큼 다가올 게 뻔하다. “용서란 이미 일어난 나쁜 일이 비록 나의 과거를 망가뜨렸을지언정 오늘과 미래는 결코 파괴할 수 없다는 ‘힘찬 자기 선언’”이라고 강조한 러스킨 박사의 말이 절로 공감된다.

성경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15)고 말한다.

‘마스크걸’은 모미의 딸 미모(신예서 분)가 엄마의 유년 시절 동영상을 보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영상 속 모미는 “제 꿈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당차게 말한다. 그 모습을 보며 미모는 눈물을 흘린다. 시청자가 아닌 한 사람의 아빠로서 소망해본다. 그 눈물의 의미가 용서와 맞닿아 있기를, 또 다른 분노와 복수심으로 뿌리내려 ‘마스크걸 시즌2’로 이어지지 않기를….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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