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덕 교수의 바이블 디스커버리] <12> 천사 가브리엘과 아베 마리아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유재덕 교수의 바이블 디스커버리] <12> 천사 가브리엘과 아베 마리아

입력 2023-09-19 03:07
  • 미션라이프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천사 가브리엘이 수태고지를 위해 마리아를 방문했습니다.(눅 1:26∼27) 마리아는 주민이 대략 400명 정도였던 북부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랐습니다. 마리아 이름은 흔해서 여자 셋 중 하나가 같은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히브리어로는 마리아가 아니라 미리암입니다. 위대한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 누이의 이름이 미리암이었으니 귀한 딸의 이름으로는 제격이었을 겁니다. 전통적으로 자식 이름은 대개 어머니가 결정했고 마리아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구약성경의 그리스어 번역본 70인역은 마리아를 미리암(Myriam)으로, 그리스어 신약성경과 라틴어 번역본은 마리아(Maria)라고 표기했습니다. 1세기 무렵 유대인들이 사용한 아람어로는 마리암(Maryam)이었습니다.

마리아는 12세 무렵 요셉이라는, 가문은 좋아도 경제적으로는 그리 넉넉하지 않은 연상의 사내와 결혼했습니다. 랍비가 권장하는 여성의 결혼적령기는 12.5세였습니다. 혼인법 역시 “딸이 성숙한 나이, 즉 12세 반에 도달했지만 결혼시키지 않았다면 집에서 부리는 종을 풀어 결혼을 시키라”고 규정했습니다. 혼기를 넘기면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는 주도권이 가장에서 당사자에게로 넘어가니 서둘러야 했습니다.

결혼은 두 단계로 진행되었습니다. 일단 사전에 합의한 지참금(mohar)을 장인과 신부에게 건네는 에루신(erusin)이 있었습니다. 약혼식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이때부터 법적으로 엄연한 부부였습니다. 다음 단계는 일정한 기간을 갖고 나서 혼례를 진행하는 니쑤인(nissuin)이었습니다. 혼례마저 치르면 신부는 비로소 친정에서 신랑 집으로 옮겨갔습니다.

혼례를 기다리며 신랑이 무엇을 선호하는지 파악하고 결혼 예복을 준비하는 기간에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와 인사했습니다.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야.”(눅 1:28, 새번역) 한글 성경은 가브리엘의 인사가 사뭇 정중하고 권위적이라 감정의 깊이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4~5세기 성경 번역으로 명성을 떨친 교부 히에로니무스는 교황 다마수스의 지시로 382년 베들레헴으로 가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했습니다. 이 라틴어 번역본이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 유일하게 정본으로 인정을 받았던 불가타 성경입니다.

이방인 출신 복음서 기자인 누가는 익숙한 그리스식 인사말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반면에 히에로니무스는 “카이레(kaire), 마리아”를 라틴어 “아베(ave), 마리아”로 고쳐 번역했습니다. 이것은 지금껏 탁월한 번역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베는 카이레와 달리 어감이 분명한 라틴식 인사말입니다. 로마인들은 형식적이거나 경직되지 않게, 그러면서도 친근하고 다정하게 인사할 때는 ‘아베’라고 말했습니다. 너무 형식적이거나, 그렇다고 하대하는 것도 아닌 아주 적당히 격식을 갖춘 인사였던 겁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안녕하세요, 마리아’ 정도입니다. 곧 닥칠 신적 간섭으로 하나님을 잉태해서 어쩌면 목숨을 잃을 처지에 놓인 나이 어린 신부(theotokos)를 배려하고 격려하려는 천사 가브리엘의 심경이 고스란히 담긴 인사였습니다.

수태고지 이후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아 길렀고, 놀라운 첫 기적과 고통스러운 십자가까지 그 곁을 함께했습니다. 사별한 가장 대신 가족을 지키려고 고군분투하고, 아들의 죽음을 슬퍼한 마리아는 나중에 사도 요한과 함께 박해를 피해 오늘날 튀르키예의 에페소스로 떠났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많이 본 기사

갓플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