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안 낳아봐 몰라”… “가만 두지 않겠다” [이슈&탐사]

국민일보

“애 안 낳아봐 몰라”… “가만 두지 않겠다” [이슈&탐사]

[죽음 부르는 갑질사회] ② 교실 속 감정노동

입력 2023-09-18 04:07
전국 교사 1008명이 국민일보에 밝힌 학부모의 교육활동 침해 언행을 ‘워드클라우드’로 시각화한 결과. 교사들이 접한 문제성 발언에서는 ‘우리애’ ‘왜’ ‘가만’ 등의 낱말이 공통으로 많았다.

“우리애한테 왜? 가만히 두지 않겠다.” “선생님은 애를 안 낳아봐서 모른다.” “애아빠가 화가 많이 났다.”

국민일보는 지난달부터 17일까지 전국교사노조연맹을 통해 현직 교사 1008명이 직접 들은 ‘교육활동 침해 행위로 기억하는 학부모의 말’을 수집했다. 교사들이 들었다는 말을 한데 모으니 단어는 1만5645개, 공백을 제외하고 총 5만2032자였다. 이 응답을 워드클라우드로 표현한 결과는 사진과 같다.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낱말은 ‘우리애’ ‘왜’ ‘가만’이었다. ‘교육청에’ ‘니가’ ‘뭔데’ ‘자질’ ‘안낳아봐서’ ‘모른다’ 등의 낱말이 뒤를 이었다.

워드클라우드로 모인 낱말들은 그 자체로 문장을 재구성했으며 교사들은 실제 이 같은 말들을 많이 듣는다고 공감했다. 교사들은 학부모들이 교사를 상대로 자신의 자녀에 대한 지도를 무조건 문제 삼거나, 특별하게 대해 주기를 주문한다고 했다. 자녀가 없는 교사들은 출산과 육아 경험을 앞세우는 학부모들로부터 교육행위를 간섭받는다고 했다. “교사가 하는 일이 없다” “대학을 어디 나왔느냐” “애 아빠가 화가 많이 나서 달래느라 어렵다” “높은 사람을 많이 안다”는 등의 말을 들었다는 교사도 다수였다.

국민일보가 설문조사한 교사 1008명 중 교육활동 침해 행위를 경험했다는 이는 993명(98.5%)이었다. 886명(87.9%)은 “학교 실태가 매우 비정상적이다”고 답했다. 학생·학부모의 교육활동 침해 행위가 없으며 학교 현장이 매우 정상적이라고 인식하는 교사는 단 1%도 되지 않았다. 폭언과 욕설을 경험한 교사는 846명(83.9%), 아동학대 고소 등 각종 소송에 시달린 이는 310명(30.8%)이었다. 711명(70.5%)은 학부모로부터 특정 학생에 대한 높은 성적 부여와 수상 요구를 받았다고 했다. 599명(59.4%)은 “교직 입문 후 열의가 매우 작아졌다”고 했다.

교사들이 국민일보에 밝힌 각자의 교육활동 침해 경험은 근절되지 않는 한국사회의 갑질 문화와 닿아 있다. 교사가 악성민원으로부터 본인을 보호할 재량권을 주지도 않고, 외부의 갑질에 단호히 대처해주지 못하는 교육 당국과 사업장 관리자들의 모습도 함께 고발됐다. 결국 교사들에게서 엿보이는 것은 이 사회가 누차 심각성을 말해온 감정노동자의 괴로움이다. 분명 근로를 통해 생계를 해결하면서도 국민 전체에 대해 봉사한다는 특수성을 가진 교사들은, 한편으로는 사회적으로 감정노동 대책이 마련될 때 사각에 처해 있었다.

대전교사노조 박소영 정책실장은 “학부모의 악성 갑질과 교사의 감정노동을 멈춰 달라”며 “교사가 무조건 감내하며 학부모와 학생, 관리자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분위기는 타파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집회에 참석한 한 40대 교사는 “계속된 비극엔 점점 각박하고 잔인해지는 사회, 본분대로 일하는 이들은 정작 하소연할 데가 없어지는 현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극단적 선택 이후에야 관심이 있다는 점이 슬프지만 비단 교사들의 일로만 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슈&탐사팀 이경원 이택현 정진영 김지훈 기자 neosarim@kmib.co.kr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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