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이 선생이 사과해”… 말리는 교장·교감이 더 밉다 [이슈&탐사]

국민일보

“그래도 이 선생이 사과해”… 말리는 교장·교감이 더 밉다 [이슈&탐사]

[죽음 부르는 갑질사회] 교사 99% “우린 감정 노동자”

입력 2023-09-18 04:06
지난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교차로에 모인 교사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7월 ‘서이초 사건’ 이후 교사들은 거의 매주 집회를 열고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보장할 입법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객’ 갑질은 점점 심해지고, ‘사업장’은 막아주긴커녕 고객에게 사과를 시키기만 한다. 감정노동자가 아니라 감정 쓰레기통이다.”

지난 16일 검정 복장으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교사 집회에 나온 한 대전 지역 교사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는 공무원의 직무 특수성, ‘교권 존중’과 ‘전문적 지위 신분’이 명시된 교육공무원법 등은 교사를 일반 노동자와 구별되는 존재로 규정해 왔다. 하지만 서울 서이초 사건부터 연이어진 학교 현장의 비극은 교사들이 “우리도 감정노동을 한다”고 말하게 만들기에 이르렀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지난 7월 교사 3만여명을 상대로 설문했을 때 99%가 “교사는 감정노동자”라는 말에 동의를 표했다.


과도한 소비자 요구에 부딪히고 일터 관리자는 갑질에 단호하게 대응해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교사의 일에는 감정노동 성격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교사들에게는 오히려 전통적 감정노동 직군들보다 독특한 어려움이 있다. “그래도 제자다” “앞길을 막을 것이냐”는 타이름에 절차를 밟는 대신 일단 참고 보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사상 처음으로 거리에 쏟아져 나온 것은 법률의 사각지대에서 쌓여온 감정노동이 임계점을 넘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김인아 한양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교사 정신건강 문제는)수면 아래에 있다가 지금 드러났을 뿐”이라며 “얼마나 오랫동안 그런 일을 겪었다면 집회에 수십만명이 나오겠느냐”고 했다.

그래도 이선생이 사과해

국민일보가 전국 16개 교육청(경남은 비공개) 상대 정보공개 청구와 경기교사노조,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실을 통해 얻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이후 지난 3월까지 4년여간 교사를 상대로 아동학대 혐의로 수사가 개시된 사건은 총 1279건이다. 이 가운데 수사 진행 중인 사안을 제외하고 불기소된 사건(무혐의와 기소유예) 숫자는 698건(54.6%)이었다. 이는 최근 4년여간 아동학대 검거 사건 전체의 불기소율(14.8%)의 약 4배에 달하는 비중이다. 모든 교사 아동학대 신고를 무고로 치부할 수는 없으나, 교사를 상대로 한 아동학대 고소 속에 허수가 비교적 많다는 해석은 가능하다.


교사들이 국민일보에 보낸 것 가운데에는 반성문을 쓰게 했다가 고소를 당한 사례, 아이가 입에 구슬을 넣어 이를 급히 빼주다 볼에 손톱자국이 남아 고소를 당한 사례도 있었다. 대전에서 사망해 안타까움을 남긴 초등학교 교사 역시 커닝 학생, 친구를 때린 학생을 혼낸 행위 등으로 일단 아동학대 혐의를 받아야 했었다. 법조계는 2014년 9월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 금지’가 명시된 아동복지법 개정을 교사 상대 고소가 증폭된 계기로 본다. 아동 보호의 취지엔 반대할 이가 없겠으나, “교사 때문에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악용하는 사례도 이후 쌓였다는 것이다.

교사들의 일하는 실태가 감정노동자의 괴로움과 닮아 있는 큰 대목은 사업장의 부실한 관리다. ‘손님은 왕’이라며 무조건적으로 고객을 앞세우고, 정작 일하는 이는 부당하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일이 학교 현장에서도 많다는 증언이 교사들 틈에서 쏟아졌다. 한 교사는 “교사에 대한 갑질은 교내에서 ‘N차 가해’가 이뤄지는데, 가장 큰 가해자는 관리자”라며 분노를 표했다. 관리자들이 정당한 일을 보호하는 바람막이가 되기는커녕, 사과를 종용하고 교사 개인 탓으로 돌리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국민일보가 교사 1008명에게 현재의 학교 현장 실태를 비정상적으로 만든 주된 책임이 어디에 있느냐고 복수응답을 청했을 때 529명이 ‘교장, 교감’을 꼽았다. 학부모(896명)보다는 적은 숫자지만 학생(338명)보다 많았다. 한 교사는 “교장에게 학부모의 악성민원 고충을 상담했더니, ‘네가 인기가 없어 그렇다’고 말하더라”고 말했다. 다른 교사는 교감이 자신을 학부모 앞에 불러 사과를 시킨 날 분통해 적었던 업무일지 일부를 국민일보에 보내 왔다.

하소연할 곳이 없다

교사를 보호하는 학교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라는 기구가 있긴 하나 대전 교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활발히 작동되진 않는다. 국민일보가 16개 교육청(경기는 비공개)을 상대로 공개받은 정보에 따르면 교보위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전국에서 8364건이 열렸다. 교원치유지원센터의 교원 심리치료 건수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5454건, 법률지원 건수는 3년간 8765건이다. 이는 전체 교원(약 50만명)의 1~2% 정도가 교보위나 심리치료, 법률지원을 각각 경험했다는 의미다. 겉보기엔 심한 문제를 겪는 교사가 불과 1~2%에 머무는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국민일보 설문조사에서 “교육활동 침해 경험이 있다”고 답한 교사 비중은 98.5%, “학교현장 실태가 매우 비정상적”이라고 답한 교사는 87.9%였다.

교사들의 현실과 교보위 개회 건수 사이에 괴리가 생긴 이유는 복합적이다. 교사들은 일단 관리자들이 “네가 이렇게 하면 실익이 없다” “한번 참아 줬으면 한다”고 타이른다고 증언했다. 교사들 스스로가 교보위 절차 개시에 대해 자괴감, 회의감을 갖기도 한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지도하는 학생을 위원회에 회부해 징계를 받게끔 하는 일인데, 이는 본인의 교육 실패까지 자인하는 격이라는 괴로움을 겪는 것이다. “교보위를 열면 교보위 업무를 맡은 또다른 교사에게 가욋일이 된다”고 말한 교사도 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교육직공무원의 ‘정신질환으로 인한 공무상요양’ 승인 건수는 2020년 90건, 2021년 106건, 지난해 160건으로 우상향 중이다. 교사가 직면한 남고소와 갑질은 앞서 한국사회에서 문제로 지적됐던 콜센터 노동자, 백화점 판매직 등 전통적 감정노동 직군들보다 오히려 심각한 대목이 있다고도 지적된다. 다른 산업군에서는 문제 인식이 자리잡혀 서로 조심하는 일이, 지식을 가르치는 학교현장에서 오히려 빈번하게 벌어지기도 한다. 일례로 여성 교사들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성희롱 발언을 들었다고 국민일보에 알려 왔다. 다른 직장에서는 큰 법적 문제가 될 일이 학교에서는 번번이 혼을 내고 끝나는 일이 된다.

전문직으로 분류돼온 교사들은 감정노동자 보호에서 오히려 사각지대에 처해 있었다. 2018년 10월부터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를 명시한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일명 감정노동자보호법)가 시행됐지만 교사는 이에 적용되지 않았다. 감정노동자 보호 운동을 펼쳐온 한인임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 공동운영위원장은 “학교는 공공영역 가운데서도 변화에 보수적이었고, 그간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다”고 말했다.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을 지낸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제자니까 도와줘야 한다’는 역할까지 지닌 교사에겐 트라우마가 오기 쉽다”며 “교사가 본업에 충실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이슈&탐사팀 이경원 이택현 정진영 김지훈 기자 neosarim@kmib.co.kr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