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자궁·안면 이식 당장 가능하지만 ‘불법’… “법제화 논의 절실”

국민일보

[And 건강] 자궁·안면 이식 당장 가능하지만 ‘불법’… “법제화 논의 절실”

국내 ‘복합조직 이식’ 현주소

입력 2023-09-19 04:06
지난달 영국 최초로 시행된 자궁 이식 수술 장면. 영국 자궁 이식 웹페이지

자궁 이식, 임신·출산 마쳐야 성공
해외 사례 많지만 국내선 ‘함구’

안면은 기증 거부감 특히 심해
사회적 공감대·합의 선행돼야

최근 성사된 손·팔 이식처럼
의술 시행뒤 법제화 따를 가능성


“2년 전 고등학생 딸에게 자궁이 없다는 진단이 나왔을 때, 정말 아무 생각이 안 났어요. 오진이길 바랐죠. 엄마로서 죄를 지은 것 같고…. 주변에 임신부를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났습니다. 그런데 내 자궁을 이식받으면 임신할 수 있다는 교수님 얘길 듣고 희망을 갖게 됐어요. 우리나라에서도 법적으로 자궁 이식이 가능한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세브란스병원 인체조직복원연구소 주최 ‘복합조직동종이식(VCA)의 다양한 현안’ 강연회에서 이 병원 남은지 산부인과 교수가 공개한 영상 속 ‘무자궁증’ 딸을 둔 부모의 하소연이다.

국내에서 이처럼 선천적인 자궁 이상으로 임신·출산이 불가능한 여성이 남의 자궁을 이식받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대는 언제쯤 올까?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의 의학기술 수준으로 당장이라도 가능하고 해당 전문가들이 상당 기간 준비해 왔다. 다만 미비한 법 제도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총상·화상 사고 등으로 얼굴을 크게 훼손당했거나 신경섬유종 같은 희귀질환을 가진 사람에게 적용 가능한 안면 이식도 마찬가지다. 자궁이나 안면 이식 모두 해외에선 꽤 많은 시행 건수가 보고되고 있지만, 한국에선 현행법상 이식 가능한 장기에 포함돼 있지 않다.

복합조직이식은 피부나 연부조직, 혈관, 근육, 뼈, 신경 등을 정밀하게 옮겨붙여야 하는 고난도 수술로 손·팔, 안면, 자궁, 호흡기관 등의 이식이 대표적이다.

손 이식의 경우 2017년 영남대병원과 W병원이 처음 성공한 이후 이듬해 장기이식 범위에 손·팔, 발·다리를 포함하는 법제화가 성사됐다. 이후 최근까지 모두 3건의 손 이식이 추가로 이뤄졌다. 모두 세브란스병원 수부이식팀의 성과다. 팀을 이끌고 있는 홍종원 성형외과 교수는 18일 “수부이식도 국내 제도화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후 성공적인 수술, 환자의 안전과 심리적 만족도 달성, 무엇보다 긍정적인 여론과 사회 분위기에 힘입어 손·팔 이식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세브란스병원에 이어 서울대, 분당서울대, 서울아산병원도 손·팔 이식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 교수는 “다만 다른 장기 이식에 비해 아직 숫자와 시행 기관이 너무 적어 궤도에 올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국내 자궁 이식 수요 상당할 것”

이제 관심은 자궁이나 안면 이식이 언제 가능할지에 쏠리고 있다. 자궁 이식의 경우 앞서 무자궁증 딸을 둔 부모처럼, 선천적 기형 또는 후천적 요인으로 자궁이 없는 여성에게 기증자(출산을 완료한 엄마·이모·자매 등 혹은 뇌사자)의 자궁을 떼내 이식하는 것이다. 난소는 정상 기능을 하지만 자궁이 없어 임신할 수 없는 여성에게 의학적으로 유일한 불임 치료의 대안이다.

남은지 교수는 “‘뮐러관무형성증’ 같은 선천적 자궁 기형의 경우 가임기 여성 500명당 1명꼴로 발생한다. 또 전체 자궁절제술을 시행받았거나 아셔만증후군(자궁내막 손상·유착) 같은 후천적 요인으로 자궁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에도 자궁 이식 수요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자궁 이식의 경우 자궁 자체의 이식에 그치지 않고 체외수정된 배아를 이식 자궁에 착상해 임신·출산까지 이뤄져야 최종 성공으로 본다. 2000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자궁 이식이 처음 시도됐지만, 면역 거부 반응으로 실패했다. 2014년 스웨덴에서 임신·출산에 성공한 자궁 이식 사례가 최초 보고된 후 미국 인도 브라질 중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 지금까지 100건 이상 시행됐고 그 가운데 40여건은 출산까지 이뤄진 것으로 보고됐다. 이들 중에는 둘째 아이까지 낳은 경우도 2~3건 있다.

최근 영국에서도 처음으로 무자궁증인 30대 여성이 40대 언니의 자궁을 이식받고 올해 안에 시험관시술 예정이라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7월 삼성서울병원에서 첫 자궁 이식이 시도된 것으로 확인됐지만 성공 여부에 대해 병원 측은 일절 함구하고 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현재로선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세브란스병원은 2020년부터 산부인과와 이식외과, 정신건강의학과 등을 중심으로 자궁이식팀을 꾸려 준비해 왔으며 기관생명윤리위회(IRB) 승인을 받아놓은 상태다. 남 교수는 “한국의 저출산이 심각하고 대리모 출산도 안되는 상황에서 자궁 이식은 불임 여성을 구제할 수 있는 의학적으로 타당한 방법으로 본다”며 “장기 이식법 개정 논의에 정부와 국회의 관심이 필요하고 아울러 자궁 이식에 대한 사회·윤리적 공감대 형성도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안면 이식, 신의료기술 인정

안면 이식은 2005년 프랑스에서 개에게 물려 얼굴이 훼손된 여성을 상대로 처음 시도된 이후 지금까지 연구논문 보고 사례만 50건 가까이 된다. 보고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미국 프랑스 터키 중국 등에서 100건 이상될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2010년대에 안면 이식 건수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증가했지만 2017년 이후 ‘만성 거부반응’ 발생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안면 이식은 정체기에 접어든 상황이다.

국내에선 세브란스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이 안면 이식 시행을 상당히 오랫동안 준비해 왔다. 최근엔 긍정적인 소식도 전해졌다. 세브란스병원이 신청한 안면 이식의 신의료기술 평가에서 유효성·안전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홍종원 교수는 “2010년과 14년, 17년 신청에선 안전성 우려, 장기 이식법에 얼굴이 포함 안 된 점 등 여러 이유로 통과하지 못했는데, 지난해 말 네 번째 도전 끝에 승인받았다”며 “손·팔 이식에 대한 긍정적 인식, 사회 환경의 변화 등이 반영된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의학 수준이나 해외의 예에서 보듯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의술이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준비를 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고 했다.

다만 자궁 이식에 비해, 안면 이식의 경우 뇌사 기증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특히 아시아 문화권에선 다른 장기에 비해 얼굴 기증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가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아산병원 최종우 교수가 최근 세브란스병원 학술 심포지엄에서 안면 이식 현황에 대해 강연하는 모습. 민태원 기자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최종우 교수는 “대부분은 다른 사람이 기증자의 얼굴을 하고 돌아다닌다는 것에 안 좋은 인식이 있다. 사실 안면 이식을 해도 똑같은 경우는 없다. ‘제3의 얼굴’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자신이 보는 신경섬유종 환자 2명이 안면 이식에 긍정적인 의사를 표시한 바 있다고 한다. 최 교수는 “우선은 IRB 통과, 신의료기술 평가 등 법제화 이전에 할 수 있는 단계는 다 해 놓고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 이식의 경우처럼 의술이 먼저 시행된 후 법·제도적 변화가 뒤따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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